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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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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작성일 09-07-09 수정일수정일 70-01-01 조회6,2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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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토통신> - 17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


                                                                                        최  영  호
                                                                  (한국민족연구원 연구위원)
 
이제 나는 분하고 슬픈 얘기를 해야 한다.

아스카시대와 나라 , 헤이안 시대를 살아 온 조상들의 자랑스런 활약상에 묻혀 있었던 거의 1년동안 쿄토는 6월의 녹음만큼이나 싱싱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도 조상들과 만나는 재미에 신이 났었고 절과 신사를 찾아 나설 때도 마음은 언제나 부자였었다. 고대만이 아니었다.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스승 노릇은 계속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초라한 시비 앞에 서는 마음은  오히려 그 전보다 더 분하다.
너무 은혜를 입으면 잊고 싶은 것인가....
일본의 천년 이상의 스승에 대한 대접은 과거 감추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이었으니......

<相國寺의 건물사이에 조용하게 자리한 高麗의 石燈, 언제 누구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는지--, 자리잡은 공간은 초라했으나, 그 자태는 너무나 당당하다>

윤동주의 시비가 있는 대학은 동지사(同志社)대학으로 일본 사학중에서 명문이다. 지난 번 찾아 갔던 相國寺와 담을 같이 하고 있었다. 어마 어마했던 절 터의 대 부분이 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길 건너면 바로 왕이 살았던 어소(御所)가 있다.

이곳을 찾아 갔던 때는 늦은 봄날이었는데 아름다운 날씨와는 달리 학교는 작고 우중충했다. 아마 서울의 대학들이 너무 잘 정비되어 있어 그런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다. 몇 사람에게 물어도 윤동주의 시비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다. 교정을 뒤지다 시피 시간을 보내고 겨우 겨우 찾아 낸 곳에는 두 개의 비가 약간의 공간을 두고 세워져 있었다.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

건물과 건물사이에 숨 죽이고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먼지에 싸인채 누가 갖어다 놓았는가 초라한 꽃병이 구석에 말라 있었다. 가끔은 한국인들이 찾아 오는지 100원짜리 동전들이 비앞에 흩어져 있고.......

누구도 아는 이 없고 제대로 관리도 하지 않은 채,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건가..

한국시인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정지용은 1923년 입학하여 6년간 이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6.25전쟁때 행방불명이 된 향수의 시인이다.
그의 비에 새겨진 시가 동지사대학과의 추억이 낳은 시라면 윤동주의 비에는 저항시인의 대표적인 작품인 “서시”였다.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한 것은 1942년. 일본 경찰에 체포된것은 1943년 7월이었다.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독립운동 혐의를 받아 체포된다. 그가 받은 죄목은 치안 유지법 위반이었고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감옥에 투옥되었다.  비틀 비틀 말라가던 그는 1945년 2월 조국의 독립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깝게 옥사했다.

내가 교사였을 때 민족 말살정책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시간에는 꼭 이 노래를 학생들과 같이 불렀었는데.......그때 학생들은 숙연했었다. 소름이 끼친다고 우는 학생도 있었다.
 
그의 비는 그가 살았던 아파트가 있었던 곳에도 세워져 있다.현재는 쿄토조형예술대학이 된 곳이다.  최근에 세워져서 그런지 이 비는 초라한 느낌이 덜하다. 작년에는 기념식에 대한 뉴스를 텔레비에서 보았다.

윤동주에 관한 얘기는 너무 유명하여 이곳에서 자세히 쓰는 것은 생략할까 한다.
그러나 근대를 억울하고 서럽게 살아 간 쿄토, 아니 일본 속 동포들의 하나의 상징으로 그 흔적을 찾고 싶었다. 

자 , 이 기회에 다시한번 그의 시라도 읊어 볼까......!

<윤동주의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2009년07년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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