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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키(今木) 神을 모신 히라노진쟈(平野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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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작성일 09-07-08 수정일수정일 70-01-01 조회6,4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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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토통신> - 15

                                                                                                    최    영    호

                                                                                (한국민족연구원 연구위원)

이마키(今木) 神을 모신 히라노진쟈(平野神社)


평일이어서 그랬을까.... 신사 경내의 한쪽 건물에서는 여자들의 노래 소리가 한가하게 들린다. 옛 가락으로 보아 고전에 나오는 노래라도 배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벼르던 길이었다. 그러나 히라노신사(平野神社)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듯 보였다, 세워 질 당시에는 무려 가로 세로 1,5키로미터의 넓이로 왕이 살았던 御所와 같은 넓이였다는데 지금은 가로 세로 200미터의 부지. 신사는 쇠락한 듯했으나  당시의 영광을 보여 주는 증언자가 많이 있었다. 곳곳에 기묘한 모습으로 살아 남아서 무언으로 웅변해 주는 나무들이었다.

이곳은 사쿠라의 명소로 널리 알려 진곳이라고 한다. 들어 가는 길 왼쪽으로 꽤 넓은 땅에  나이 많은 벚나무들이 산책하기 좋게 구획되어 있었으나 내 눈을 사로 잡은 나무는 그것들이 아니었다.

본전 왼쪽에 있는 쿠스노키(우리나라에서는 綠나무라고 한다)였다. 나무 둘레에는 몇가닥의 줄이 있고 그 줄에 오미쿠지(신사에서 길흉을 점쳐 주는 종이)가 촘촘히 묶여 있었다.  이런 모습은 어느 신사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놀 란 것은 이나무의 크기와 굴레였다.

세 사람쯤은 되어야 손에 손잡고 안아 볼 수 있는 큰 나무. 도대체 몇 살이나 되었을까? 신사를 지키는 분은 400년 이상이라고 했다. 아직도 건강한 이 쿠스노키가 우리에게 들려 주고 싶은 얘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오늘은 그것을 풀어 볼까 한다.

이미 제목을 읽은 분들은 짐작했으리라. 멀리 멀리  백제에서 온 도래인들의 신을 모신 신사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이곳에는 네분의 신이 모셔져 있다.

그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신이 이마키노카미(今木神)이다. 이마키는 今來라고 쓰기도 하며 渡來人과 관계가 깊은 단어라는 사실은 몇차례 이곳에 썼다. 원래 이 신은 백제인들이 살았던 이마키군(今來郡)에 모셔져 있었으나 칸무 천황의 아버지인 光仁天皇이 平城京의 궁중(田村後宮)안으로 모셨고 헤이안 시대가 열리자 천도와 더불어 같이 모셔져 온 신이다. 일본 국왕이 천도할 때마다 같이 모신 이 신은 무령왕의 후손이고 일본 국왕 칸무의 어머니인 타카노니이가사(高野新笠)의 조상신이다. 어떤 학자는 백제 성왕이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 서열의 신은 쿠도노카미(久度 神).  역사와 고어의 발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백제의 구수왕이라고도(內藤虎次郞), 혹은 칸무 천황의 어머니 집안의 조상신(上田正昭)이라고도 한다. 현재에는 부뚜막(아궁이) 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칸사이지방에서는  부뚜막을 “오쿠도상”이라고도 한다는데 아마도 쿠도신으로부터 유래하지 않았을까?

세 번째 신은 후루아키노카미(古開神), 古는 백제의 비류왕,開는 초고왕이라고 하여 두신을 합쳐 놓았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內藤虎次郞) 어찌했든 이들 신은 백제계 도래인 호족들의 조상신임에는 틀림이 없고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위상이 낮아진 현재에는 인간의 생활과 관계가 있는 염직 수예의 신이라든가 부뚜막신, 평안의 신등의 이름으로 받들어져 있다.

네 번째 히메카미(比賣神)는 바로 타카노니이가사(高野新笠)의 어머니 집안의 조상신이다. 타카노니이가사의 아버지는  和 乙繼, 어머니는  지방 호족의 딸인 土師眞妹로 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집안도 백제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土師)氏는 타카노니이가사가 죽은 후 성을 오오에(大枝)氏로 바꾸었는데 왕모의 무덤이 오오에(大枝)에 만들어진 이후였다. (오오에는 이들 씨족이 살았던 본거지). 네 번째 신이 이 신사에 모셔 진 것은 9세기 중엽.

얘기가 조금 복잡해 졌으나 정리하면 간단하다. 헤이안 시대를 연 칸무 천황의 어머니가 쿄토에  백제계 무령왕의 후손인 아버지 집안의 조상신을 모셨고 그 이후 어머니 집안의 조상신도 모셨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신사가 왕성 수호의 신을 모신 22개의 신사중 서열 5위였다. 히라노신사의 유서(由緖)에는 궁중신과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고 쓰여 있기도 하다. 어마어마 했던 신사의 부지도 찬란했던 시대와 함께 사라졌으나 이렇게 기록은 남아 있다.  헤이안 시대에 백제인은 과연 어떤 존재였단 말인가? 나는 결론을 이글을 읽는 독자에게 맡긴다.

찾아 오는 이 없는 쓸쓸함이 묻어 나는 여름날의  神社 뜨락은 그러나 역사의 시간이 깊게 각인된 고풍의 위엄이 범상치 않다. 400여년 이곳을 지키고 있는 쿠스노키 옆에는 100년이 넘었다는 시다레자쿠라의 가지가 땅을 빙 둘러 나무 중심을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공터의 한아름도 넘는 고목들이 우리를 부른다. 이미 물이 없어 진 연못의 흔적이  또 발을 멈추게 만든다.............

이런 역사를 현재의 일본 국왕은 어느 해 정월 기자회견에서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백제계를 외척으로 가진 혈통이라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이제 돌아 가야 한다. 어느 해 사쿠라가 만발할 때 다시 오고 싶다. 잊혀 져 버린 위대했던 조상신들이 그 때 만이라도 사람들의 참배 물결속에 싸여 계심을 볼 수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부질없구나. 이미 의미가 달라져 있는 것을.......


                                                                                                <200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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