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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오 대사 (松尾大寺)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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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작성일 09-05-01 수정일수정일 70-01-01 조회9,70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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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통신>-4

일본 교오토를 개척한 하타(秦)씨

두번째 이야기 ; 마쓰오 대사 (松尾大寺)를 찾아서


                                                                    최영호 (한국민족연구원 연구위원)

하타(秦)씨가 말아 놓은 형형색색의 실타래를 조금이라도 풀어 보고자 두 번째 찾아 간 곳은 마쓰오 대사(松尾大社)였다. 4월 15일 화요일 오후,  이미 지기 시작한 벚꽃의 이파리가 교토 거리거리에 흩어져 날리는 날, 그곳에는 노란 야마부키(山吹 ,우리나라에서는 황매화라고 흔히 말한다)꽃이 만발해 있었다. 또 다른 볼 일이 있어 미국에 한 달간 다녀오는 동안 몇 가지의 꽃들이 피고 졌는지..... 

지난 2월 이미 한 차례 마쓰오 대사를 다녀 온 이후 또다시 그곳을 찾아 간 목적은 일본에서 유명한 정원이라는 송풍원(松風苑)을 보기 위한 것도, 전국의 술병들을 모아 놓은 전시관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후 3시 이후에는 개방을 안 한다는 마쓰오 대사 뒷 산 깊숙하고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이와쿠라(盤座)를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서기 701년, 하타노이미끼토리(秦忌寸都理)가 높이 5미터가 넘는 이 바위 신을 섬기기 위해  마쓰오 신사를 세웠다는 데 어찌 이 바위를 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마쓰오 대사는 교토 가쓰라 자카(桂坂)에 있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동해자연 보도”(東海自然步道)를 따라 걸어 한 시간 쯤 걸리는 곳에 아주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산 속에도 대나무 숲에도 동네 주택가에도 ‘동해자연 보도’를 따라 가는 길이 똑같은 표지로 세워져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유명한 절이랑 신사들을 이곳 저곳에서 만날 수 있어서 옛날 쿄토의 분위기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아주 독특한 산보길이기도 하다. 아주 좁은 길에 물이 흐르는 내가 있고 그 물에는 민물 다슬기 마저 자라고 있다.  냇가  옆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주택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데 집집마다 예쁜 꽃과 나무들을 키우고 있어서 두 시간 가까이 걸어서 아라시야마까지 가는 길이 전혀 피곤하지 않을 정도다. 가다보면 그 유명한 이끼 정원인 고케테라(西芳寺 苔寺)도 있고 가을에나 볼 수 있는 방울벌레가 일년내내 절간 방안에서 울어 대는 영충사(鈴虫寺)도 있다. 그리고 만나는 마쓰오 대사.

이 신사의 설명에 의하면 5세기에 한반도에서 건너 온 하타씨 가문이 쿄토를 개척하여 농경생활과 양잠 비단 기술 등을 가르치며 마쓰오 산의 신령을 씨족 신으로 모시며 세운 신사라고 한다. 많은 신사가 세워지고 없어지고 하는 가운데도 이 신사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에 자리 잡고 지금도 관광버스가 쉬지 않고 드나드는 사찰의 도시 쿄토에서 그 이름이 우뚝한 아주 유명하고 거대한 신사다.  일본인에게 이 신사에 대해서 물으면 “ 아 , 술의 신(酒神)을 모시는 신사 말이죠?”  라는 대답이 나온다. 일본에 양조 기술을 가르쳐 준  하타씨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번에 썼다. 

이곳 반좌에 오르는 길 입구에 거북이 입에서 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는데 그 물로 술을 담그면 맛이 좋고 상하지도 않는 다는 전설이 있어서 아직도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역시 양조기술을 가르쳐 준  하타씨였으니 이곳에 술 신이 모셔져 있는 것은 당연하겠거니와 신사 중심점, 이와쿠라가 있는 산정에서  흘러 내려 오는 물이  전국의 양조 장으로  흘러 들어 가 술을  만들때 상징적인 의식용으로 쓰인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물 맛 또한 기가 막혔다. 이 신사에는 술 박물관과 함께 전국의 술 병들이 모셔져 있다.(사진 확인)

이와쿠라(盤좌)를 만나러 가는 길.

입장료 1000엔을 내니 우선 전화를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그곳에 준비되어 있는 특별한 서류에 주소, 성명, 전화번호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게 하더니 “허가증”이라고 쓴 목에 걸 수 있는 팻말과 “마쓰오 대사”라고 쓴 흰 천 목걸이, 그리고 방울이 달린 대나무 지팡이를 주면서 어깨에 두르고, 지팡이로 삼으란다.  그리고는 곧 이어 흰 종이로 만든 수술로 안전을 비는 의식을 치른 다음, 드디어 방울 소리를 울리며 산행을 시작, 그러나 올라가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4년(平成 16년 )에서야 개방했다는 이 산 길은 시멘트와 철근으로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정리 해 놓은  옛 산의 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산이었다. 거목들이 줄줄이 서 있는 넓지 않은 길을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올라  가는 동안 나무뿌리들이 적당히 계단을 만들어 주었다. 약 40분 간 숨을 헐떡이며 올라 간 그곳에, 이와쿠라(盤座)가 있었다.

해발 220미터. 높지는 않았으나, 계곡은 깊었으며 바위 밑에 아직 눈덩어리가 남아 있어 외경의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  이 산이 해발 223m라니 그 바위가 최고 높은 곳에서 거목들과 함께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바위 이름을 듣고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넓고 큰 바위라고 생각했으나 산 한 자락을 이루고 있는 울퉁불퉁하고 뾰족 뾰족한 바위 산, 그 위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바위 밑에는 딱딱한 눈덩어리가 4월 중순에도 남아 있는  약 5m의 높이와 10m는 됨 직한 길이의 바위였다. 그 정면에  우뚝 서 있는 수 백 년은 되었음직한 나무 한그루  또 한 그루는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데 역시 수백년 된 고목이다. 그 나무들 앞에 얕으막한 단을 쌓고  흰 종이 다발을  군데 군대 끼운 새끼끈을 둘러 두었다.

  7세기 경 하타씨 가문을 지켜 준 산신령이 바로 이 바위에  계시다니...! 그 옛날을 생각하며 우리도 두 손을 모았다.  (사진에서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눈 덩어리이고 그 옆에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 눈이다.  소금처럼 아주 딱딱했다. )

쿄토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이 신사가 섬기는 신은 물론 마쓰오 산(松尾山)의 신령이지만 이 신사가 일본에서 유명한 신사가 된 것은 헤이안(平安) 천도(遷都)이후 왕실의 수호신사로서의 위치 때문이다. 하타씨는 일본 왕실이 나라(奈良)에서 쿄토로 천도할 때 그 땅의 3분의 2를 제공한 집안이라고 한다. 마쓰오 신사가 왕실의 수호신이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였으리라.

794년 헤이안시대가 시작될 때 그의 땅은 얼마나 많았을까? 일본 왕실인 고쇼(御所)는 물론이고 교토에서 가장 쿄토다운 곳, 사가노(嵯峨野)와  아라시야마, 일본인 아니라도 꼭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많고 실제로 그곳에 가면 외국인을 아주 많이 만난다. 그런데 바로 이곳을 개척한 사람들이 신라에서 건너 온 하타씨 집안이라는 사실 앞에 나는 몸이 떨린다.

마쓰오 대사는 아직도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신사의 하나이니 하타씨는 일본 천이백년의 수도 쿄토를 일군 대접을 조금이라도 받고 있는 셈인가......... 

일본인들이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는 아라시야마에는 그 곳 단풍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다리가 하나 있다. 카쓰라 가와(桂川)의 토게쓰교(渡月橋). 그 유명한 다리 한 기둥에 오오이가와(大堰川)라고 쓰여 있다. 오오이가와, 지난 번 하타씨 이야기 그 첫 번째에서 쓴 것처럼 이 일대에 치수사업을 벌려 벼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준 곳이다.

아직 그 옛 이름이 다리 기둥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가을에 갔더니 이다리위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로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일본인 학자 미야모토겐지(宮元健次)의 <神社의 系譜>라는 책에는 베틀로 짠 천을 하타오리(機職)라고 하는데 그 말도 이 가문에서 나왔다고 하며 심지어는 어원으로 따져 보면 영어로 ‘silk’인 비단도 하타씨의 고향 , 신라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하타씨가 가르쳐 준 양잠업과 비단 짜는 기술이 중국, 아니 세상에 일본의 상징이 되었다는데.....!

이곳 쿄토의 니시진(西陣)은 아직도 일본의 견직물 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곳이다. 그 견직물 산업이 일제 시대 이후에 우리 조선 어머니들이 값싼 임금으로 일본 교토의 베틀에 앉아 키워 졌다니 얼마나 슬프고도 서글픈 이야기인가....  하타씨가 가르쳐 준 기술의 댓가가  조선 여인들의 눈물로 이어졌다면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도대체 하타씨는 나라시대와 헤이안 시대에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인물이었을까?

아직도 그들이 남긴 족적은 쿄토에 많고도 많다. 쿄토의 3대 축제의 하나인 아오이마쓰리(祭)가 다가온다.  5월 15일에 열리는 이 축제는 카미카모신사(上賀茂神社)가 주관한다. 그런데 이 신사가 모시는 신의 아버지 신이 마쓰오 신사가 모시는 신인 오오야마 쿠이노카미(大山의神)이다. 그리고 이 신사를 세운 사람 카모(賀茂)씨는 하타씨의 사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타씨가 세운 또 하나의 유명한 신사가 있다. 쿄오토 시 남쪽의 후시미이나리(伏見稻荷)대사다. 한자를 보아도 이것은 벼농사와 관계있는 신사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은 상업 번성의 신이 이 신사에 계시다고 믿고 새해 첫날 이곳에 가서 한해의 번영을 빈다고 한다.

일본인은 아직도 새해가 되면 신사에 가서 일 년 신수를 빌고 부적을 산다. 기독교가 일본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를 이곳에 와 보면 이해가 된다. 그들이 섬기는 신을 모시는 신사들이 주최하는 축제들은 일년 내내 일본 전국에서 벌어진다. 외국인에게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은 이 볼거리들은 전통과 대중 예술이 대접받는 현대에 일본인의 자부심이 된다.

그런데.....  재일 사학자 김달수씨가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그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었다.

그 분이 일본 나라 쪽 신사를 찾아다니며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찾고 있을 때,  식당에서 만난  한 여인과 나누었던 대화.

“일본의 신사는 대개 다 한국에서 온 신들을 모신 곳이지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다 바보가 되어 버렸지요”

“그래요? 어째서 그런가요?”

“왜라니요? 옛날에 한국에서 신들이 다 건너와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본은 전쟁에 졌어도 이렇게 잘 사는데 한국은 둘로 나누어 아웅다웅 하고 있잖아요. 그것은 신들이 모두 없어져서, 그래서 모두 바보가 되었기 때문 이지요”

1990년대 발행된 책 속에 나오는 얘기이지만 일본의 신사의 유래를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이곳에 옮기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랬나....? 우리나라에 다른 종교가 빨리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신들이 다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이었나?  허허허.

하타씨!  그 가문의 무덤이 쿄토의 외곽인 묘심사 서쪽, 인화사 남쪽에 해당하는 나라비가오카 (双가丘)라는 구릉지역에 44기 이상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무덤을 참배하기 전에 또 하나의 하타씨 유적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지난 번 코류지에서 소개했던 세 개의 기둥이 있는 도리이(鳥居)에 관한 것이다.

일본 유일의 이 세기둥 도리이는 오랜동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가 최근 자연력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그의미가 밝혀졌다. 

누에 신을 모신 , 이 신사를 통해 만나는 하타씨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앞에 나타날 것인가?
                                                                                            2009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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