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오토를 구축한 하타(秦)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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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작성일 09-03-03 수정일수정일 70-01-01 조회10,102회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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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오토를 구축한 하타(秦)씨
최영호 (한국민족연구원 연구위원)
1, 코류지(광융사)이야기
어제는 우즈마사(太秦)에 있는 코류지(廣隆寺)를 찾았다.
3월 1일, 봄 냄새가 물씬 나는 쿄오토의 거리를 달리며 벚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다운 꽃동네가 펼쳐질 까 상상해 보며 가는 길. 올해만 해도 코류지행이 두 번째다. 벌써 몇 번째 온 길인가? 내가 일본 쿄오토에 처음 온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외국 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된 첫 해였던 그 때 , 그러나 그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아버님께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아니,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코오토에서 광륭사(廣隆寺)를 안 가 보다니....”
그로부터 5년 뒤 , 드디어 뵙게 된 미륵보살님,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길고도 긴 옛날이야기, 풀어도 풀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 같은 하타씨 이야기.
오늘은 실타래의 한 가닥만이라도 잡아 보고자 한다.
코류지의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 붉은 소나무, 적송으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준 것은 한 대학생의 실수였다고 한다.
너무도 아름다운 미륵보살님의 미소에 반하여 자기도 모르게 껴안다가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렸는데 이것을 수리하면서 이 나무의 정체가 밝혀졌다는 것이다.
경북 봉화에 자생한다는 춘양목이라고 하던가.....?
미륵보살님은 당신 몸을 잃으면서 까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 용산 박물관에 있는 국보 83호인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너무 닮은 이 미륵상에 대해 이제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이것을 만든 분은 과연 누구였을까? 백제인 이었을까? 신라인이었을까?
만든 곳은 어디였을까? 우리 나라였을까? 일본이었을까?
아직도 다 풀어 지지 않은 수많은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던져 주는 미륵보살님은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를 감동시켰고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의 가슴을 뒤 흔들어 놓았으며,
드디어 1951년 일본 국보 1호가 되었다.
일본은 이제 국보에 번호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절 정문 옆 광고판에는 반가사유상의 우아하기가 그 짝이 없는 미소 옆에 ‘국보 1호’라는 글씨가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다. 지우기에는 너무 서운했을까......?
도대체 왜 이곳에 한국과 관련이 있는 이 불상이 있을까? 이 절은 누가 세운 절일까?
여기서 우리들은 하타씨라는 인물과 만날 수밖에 없다.
하타씨는 신라 계, 소가(蘇我)씨는 백제 계, 승려 혜자(惠慈)는 고구려인, 그 중심에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있다. 물론 하타씨도 소가씨도 국적이 분명한 건 아니지만 대개 그렇게 학자들은 말한다. 그중에 하타씨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이다.
그가 언제 어디에서 일본에 왔는지 분명한 기록은 없는 듯하다. 많은 학자들이 그 가문을 연구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한국의 어느 집안과 연결되어 있는지 찾아 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코류지는 서기 603년 하타노카와카쓰(秦河勝)가 쇼토쿠태자에게 불상을 하사 받아 본존으로 모시기 위하여 세운 절이라고 일본서기(日本書記)에 기록되어 있으며 쿄오토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그리고 그 본존이 현재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는 사실도 절 기록에 남아 있다고 한다. 쇼토쿠 태자는 삼국 불교 문화의 영향 아래 일본 고대 문화를 성립 시킨 인물이다. 그의 스승은 한국인들이었으며 미국의 대표적 일본 연구자 코벨은 그 혈통 또한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이 절의 上宮王院에는 33세였던 당시의 쇼토쿠태자상이 모셔져 있다니 태자와 하타씨와의 긴밀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시대를 열어 가는 열쇠는 당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첨단 문화, 선진문화가 아닐까? 그렇다면 일본 고대사회를 열어 간 첨단문화는 무엇이었을까? 무지의 세계속에서 추위에 떨며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농경기술을 가르쳐 주었다면, 또 직조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첨단 문화가 아니겠는가?
일본 최고의 단풍으로 유명한 아라시야마(풍산)를 가려면 카쓰라 가와(桂川 )를 건너지 않으면 안된다. 쿄오토의 대표적인 두 강인 카모 가와(鴨川)와 카쓰라 가와(桂川)중에 더 넓고 큰 것은 카쓰라 가와인데 이강에 처음으로 치수 사업을 벌려서 농사를 짓게 만든 사람이 하타씨족이다.
재일사학자 김달수선생에 의하면 야마시로(옛코오토 이름)의 아라시야마 산기슭에 호즈천( 保津川)의 급류를 막아 지금의 치토리가후치(千鳥久淵)를 넓게 파서 오오이천(大堰川. 桂川 )을 만들어 쿄오토분지를 개발했다고 한다. 지금도 오오이천은 그 글자 그데로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견직물 공업의 중심지는 쿄오토이다. 그런데 이곳에 처음으로 누에고치의 사용법을 가르쳐 준 인물이 하타 씨족이다. 그 뿐인가? 처음으로 양조법을 가르쳐 준 인물도 하타 씨족이다. 다음에 소개할 유명한 마쓰오 (松尾_)신사가 바로 술신을 섬기는 신사인데 하타씨족과 관련이 깊다.
이쯤 되면 어떤가? 숨이 막히지 않은가!!
그들은 당시의 대 재벌이었다.
쿄오토 땅을, 헤이안시대를 연 칸무천황에게 기증한 인물도 하타 씨족이라고 코벨씨는 말한다. 그럴 만 한것이 치수 사업을 벌려 농사를 처음 시작했고 직조 기술과 양잠을 가르쳐 군림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을까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올해 들어 두 번째 우즈마사에 간 것은 직조 신(織組神)과 양잠 신(養蠶神)을 모신 신사를 찾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광륭사의 입장권은 다른 절에 비해 비싸다. 한 사람당 700엔, 금각사 용안사 같은 유명한 절도 대개 500엔 내지 600엔을 받는다. 입장권에 차이를 두어 절의 가치를 더 높은 곳에 두고 싶은 마음, 그것이 이절의 자존심이 아닐까 싶었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게 다시한번 인사드리고 입장권을 파는 안내인에게 물어서 찾아 간 곳은 오오사키(大酒)신사와 코노시마(목명)신사. 오오사키 신사는 직물(織物)신인, 쿠레오리노 카미(吳織神)와 아야오리의 카미(漢織神)를 모시는 신사이고 코노시마 신사는 누에를 모시는 신사라고 한다. 오오사키 신사는 코류지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니 있었다. 주택가에 숨어 있어서 지나치기 쉬운 아주 자그마한 신사였으나 우리에게는 참 귀하고도 의미 깊게 느껴 져서 쉽게 발길이 돌려 지지가 않았다. 읽을 수도 없게 작은 글씨에다가 지워져서 보이지도 않는 나무판 설명문을 열심히 읽으려는 우리가 안타까웠는지 주민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건다. 원래는 코류지 안에 있었던 것을 메이지 시대, 신 불(神 佛) 분리정책으로 이곳으로 옮겨 왔다던가....?돈이 없어 설명판을 다시 보수하지 못하노라고......
세상에, 이 신사를 세운 분들이 누구인데... 이땅의 개척자들이었는데......
그 주민에게 다시 물어 약 20분 이상 걸어서 찾 아 간 곳이 코노시마 신사였다.
일본에서 유일한 도리이가 있다면서 강추해 준 그곳도 보살핌 없이 세월을 보내는 잊혀 진 곳이 되어 있었다. 직조의 꽃 명주, 비단. 일본의 비단은 그 질에 있어 세계 최고가 아니던가. 기모노 문화를 우리 알고 있지 않은가. 그 혜택을 고마워하면서 신의 섬김을 받았던 누에는 이 대접을 어떻게 받아 드리고 있는지 몰라....
아, 참 . 있었다. 일본에서 유일한 모습이라는 , 기둥이 삼각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도리이가 나무 목책사이로 보였다 .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카메라에도 잘 잡히지 않는 이 도리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보살핌 없이 버림받고 있는 누에신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돌아 보고 또 돌아 보곤 했다. 주위가 주택가여서 신사 주위의 고목만이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는데 주민은 그렇게 말했다.
“이 일대가 전부 하타 씨족이 세운 코류지 경내였다”고
글쎄, 절 안에 신사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이 일대가 그 옛날에 하타 씨족 관할하에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그 지역 일대에는 아직도 하타 씨족과 관련 있는 많은 사적이 있다고 한다.
쿄오토의 산업과 문화발달의 원류였던 우즈 마사 , 몇 번의 화재에도 살아 남았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석가 다음 세상에 우리를 구제하러 오신다는 이 분은 오늘도 모든 중생을 어떻게 구제할까 생각하며 저 아름다운 모습으로 언제 내려 올 까 사색하고 계신 건 아니신지!!!!!!!!!!!!!!!!!!! (2009.03.2)
http://blog.naver.com/goodsociety/90043366221
최영호 (한국민족연구원 연구위원)
1, 코류지(광융사)이야기
어제는 우즈마사(太秦)에 있는 코류지(廣隆寺)를 찾았다.
3월 1일, 봄 냄새가 물씬 나는 쿄오토의 거리를 달리며 벚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다운 꽃동네가 펼쳐질 까 상상해 보며 가는 길. 올해만 해도 코류지행이 두 번째다. 벌써 몇 번째 온 길인가? 내가 일본 쿄오토에 처음 온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외국 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된 첫 해였던 그 때 , 그러나 그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아버님께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아니,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코오토에서 광륭사(廣隆寺)를 안 가 보다니....”
그로부터 5년 뒤 , 드디어 뵙게 된 미륵보살님,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길고도 긴 옛날이야기, 풀어도 풀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 같은 하타씨 이야기.
오늘은 실타래의 한 가닥만이라도 잡아 보고자 한다.
코류지의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 붉은 소나무, 적송으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준 것은 한 대학생의 실수였다고 한다.
너무도 아름다운 미륵보살님의 미소에 반하여 자기도 모르게 껴안다가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렸는데 이것을 수리하면서 이 나무의 정체가 밝혀졌다는 것이다.
경북 봉화에 자생한다는 춘양목이라고 하던가.....?
미륵보살님은 당신 몸을 잃으면서 까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는지 모른다.
우리 용산 박물관에 있는 국보 83호인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너무 닮은 이 미륵상에 대해 이제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이것을 만든 분은 과연 누구였을까? 백제인 이었을까? 신라인이었을까?
만든 곳은 어디였을까? 우리 나라였을까? 일본이었을까?
아직도 다 풀어 지지 않은 수많은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던져 주는 미륵보살님은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칼 야스퍼스를 감동시켰고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의 가슴을 뒤 흔들어 놓았으며,
드디어 1951년 일본 국보 1호가 되었다.
일본은 이제 국보에 번호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절 정문 옆 광고판에는 반가사유상의 우아하기가 그 짝이 없는 미소 옆에 ‘국보 1호’라는 글씨가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다. 지우기에는 너무 서운했을까......?
도대체 왜 이곳에 한국과 관련이 있는 이 불상이 있을까? 이 절은 누가 세운 절일까?
여기서 우리들은 하타씨라는 인물과 만날 수밖에 없다.
하타씨는 신라 계, 소가(蘇我)씨는 백제 계, 승려 혜자(惠慈)는 고구려인, 그 중심에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있다. 물론 하타씨도 소가씨도 국적이 분명한 건 아니지만 대개 그렇게 학자들은 말한다. 그중에 하타씨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이다.
그가 언제 어디에서 일본에 왔는지 분명한 기록은 없는 듯하다. 많은 학자들이 그 가문을 연구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한국의 어느 집안과 연결되어 있는지 찾아 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코류지는 서기 603년 하타노카와카쓰(秦河勝)가 쇼토쿠태자에게 불상을 하사 받아 본존으로 모시기 위하여 세운 절이라고 일본서기(日本書記)에 기록되어 있으며 쿄오토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그리고 그 본존이 현재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는 사실도 절 기록에 남아 있다고 한다. 쇼토쿠 태자는 삼국 불교 문화의 영향 아래 일본 고대 문화를 성립 시킨 인물이다. 그의 스승은 한국인들이었으며 미국의 대표적 일본 연구자 코벨은 그 혈통 또한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이 절의 上宮王院에는 33세였던 당시의 쇼토쿠태자상이 모셔져 있다니 태자와 하타씨와의 긴밀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시대를 열어 가는 열쇠는 당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첨단 문화, 선진문화가 아닐까? 그렇다면 일본 고대사회를 열어 간 첨단문화는 무엇이었을까? 무지의 세계속에서 추위에 떨며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농경기술을 가르쳐 주었다면, 또 직조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첨단 문화가 아니겠는가?
일본 최고의 단풍으로 유명한 아라시야마(풍산)를 가려면 카쓰라 가와(桂川 )를 건너지 않으면 안된다. 쿄오토의 대표적인 두 강인 카모 가와(鴨川)와 카쓰라 가와(桂川)중에 더 넓고 큰 것은 카쓰라 가와인데 이강에 처음으로 치수 사업을 벌려서 농사를 짓게 만든 사람이 하타씨족이다.
재일사학자 김달수선생에 의하면 야마시로(옛코오토 이름)의 아라시야마 산기슭에 호즈천( 保津川)의 급류를 막아 지금의 치토리가후치(千鳥久淵)를 넓게 파서 오오이천(大堰川. 桂川 )을 만들어 쿄오토분지를 개발했다고 한다. 지금도 오오이천은 그 글자 그데로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견직물 공업의 중심지는 쿄오토이다. 그런데 이곳에 처음으로 누에고치의 사용법을 가르쳐 준 인물이 하타 씨족이다. 그 뿐인가? 처음으로 양조법을 가르쳐 준 인물도 하타 씨족이다. 다음에 소개할 유명한 마쓰오 (松尾_)신사가 바로 술신을 섬기는 신사인데 하타씨족과 관련이 깊다.
이쯤 되면 어떤가? 숨이 막히지 않은가!!
그들은 당시의 대 재벌이었다.
쿄오토 땅을, 헤이안시대를 연 칸무천황에게 기증한 인물도 하타 씨족이라고 코벨씨는 말한다. 그럴 만 한것이 치수 사업을 벌려 농사를 처음 시작했고 직조 기술과 양잠을 가르쳐 군림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을까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올해 들어 두 번째 우즈마사에 간 것은 직조 신(織組神)과 양잠 신(養蠶神)을 모신 신사를 찾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광륭사의 입장권은 다른 절에 비해 비싸다. 한 사람당 700엔, 금각사 용안사 같은 유명한 절도 대개 500엔 내지 600엔을 받는다. 입장권에 차이를 두어 절의 가치를 더 높은 곳에 두고 싶은 마음, 그것이 이절의 자존심이 아닐까 싶었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게 다시한번 인사드리고 입장권을 파는 안내인에게 물어서 찾아 간 곳은 오오사키(大酒)신사와 코노시마(목명)신사. 오오사키 신사는 직물(織物)신인, 쿠레오리노 카미(吳織神)와 아야오리의 카미(漢織神)를 모시는 신사이고 코노시마 신사는 누에를 모시는 신사라고 한다. 오오사키 신사는 코류지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니 있었다. 주택가에 숨어 있어서 지나치기 쉬운 아주 자그마한 신사였으나 우리에게는 참 귀하고도 의미 깊게 느껴 져서 쉽게 발길이 돌려 지지가 않았다. 읽을 수도 없게 작은 글씨에다가 지워져서 보이지도 않는 나무판 설명문을 열심히 읽으려는 우리가 안타까웠는지 주민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건다. 원래는 코류지 안에 있었던 것을 메이지 시대, 신 불(神 佛) 분리정책으로 이곳으로 옮겨 왔다던가....?돈이 없어 설명판을 다시 보수하지 못하노라고......
세상에, 이 신사를 세운 분들이 누구인데... 이땅의 개척자들이었는데......
그 주민에게 다시 물어 약 20분 이상 걸어서 찾 아 간 곳이 코노시마 신사였다.
일본에서 유일한 도리이가 있다면서 강추해 준 그곳도 보살핌 없이 세월을 보내는 잊혀 진 곳이 되어 있었다. 직조의 꽃 명주, 비단. 일본의 비단은 그 질에 있어 세계 최고가 아니던가. 기모노 문화를 우리 알고 있지 않은가. 그 혜택을 고마워하면서 신의 섬김을 받았던 누에는 이 대접을 어떻게 받아 드리고 있는지 몰라....
아, 참 . 있었다. 일본에서 유일한 모습이라는 , 기둥이 삼각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도리이가 나무 목책사이로 보였다 .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카메라에도 잘 잡히지 않는 이 도리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보살핌 없이 버림받고 있는 누에신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돌아 보고 또 돌아 보곤 했다. 주위가 주택가여서 신사 주위의 고목만이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는데 주민은 그렇게 말했다.
“이 일대가 전부 하타 씨족이 세운 코류지 경내였다”고
글쎄, 절 안에 신사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이 일대가 그 옛날에 하타 씨족 관할하에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그 지역 일대에는 아직도 하타 씨족과 관련 있는 많은 사적이 있다고 한다.
쿄오토의 산업과 문화발달의 원류였던 우즈 마사 , 몇 번의 화재에도 살아 남았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석가 다음 세상에 우리를 구제하러 오신다는 이 분은 오늘도 모든 중생을 어떻게 구제할까 생각하며 저 아름다운 모습으로 언제 내려 올 까 사색하고 계신 건 아니신지!!!!!!!!!!!!!!!!!!! (2009.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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