求同存異’의 時代論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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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작성일 20-04-13 수정일수정일 20-04-13 조회2,03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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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求同存異’의 時代論理
조 정 남
(한국민족연구원)
우리사회도 이제 다양한 민족 집단들이 함께 공존해 가는 다문화사회의 문턱을 넘어선지 오래다. 점점 증대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물론 외국에서 시집온 이른바 ‘결혼이민자’들 또한 퍽 낮 익은 모습으로 우리들의 이웃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등으로 우리의 민족환경 또한 전반적인 세계화의 흐름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나날이 확대되어 가는 정보와 물자, 그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가속화되면서 국가와 국가 간의 구획이나 지역과 지역 간의 거리를 약화 내지는 단축시켜가고 있는 것이, 이른바 세계화현상이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내용이며, 이러한 현상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다문화사회의 확대라고 볼 수 있다. 다문화의 민족환경 속에서는 더 이상 한 국가의 울타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단일적인 문화를 공유하기도, 단일의 언어적 통일을 기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더 더욱 단일의 충성 대상을 가진 충성공동체가 공고화 되기란 지난한 일이 되어 가고 있음 또한 부인키 어렵다.
이제는 어느 나라든 그 나라가 문명 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나라라고 한다면 그 국가 안에서 생활하는 있는 구성원들에게 더 이상 이른바 ‘국민적인 통일성’의 강요는 어려울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일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활짝 열린 세계화의 공간에서는 서로간의 숨 가쁜 왕래로 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단일의 언어, 단일의 문화, 단일의 충성과 같은 이른바 순수하고 통일적인 ‘구성원’들 만을 이상적인 형태로 생각하는 전통적인 ‘민족국가’의 현실적인 의미는 점차 퇴색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 국가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전체 구성원들이 점점 다양화해 져 가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제 더 이상 경직된 하나의 통일적인 구성원들의 주형을 전재로 한 ‘국민’의 구조화 작업은 이제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바람직한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가마솥에 잡다한 내용물을 섞어 넣어 결국은 그 다양성을 잃고 하나의 단일물로 융해되어 나오는 단일의 국민 즉 ‘melting pot’ 형 국민이 아니라, 잡다한 구성요소들이 다정하게 공존하며 제 각 각의 색깔과 냄새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들이 고유하게 가진 개별성과는 또 다른. 새로운 하나의 통합성을 이뤄내는 이른바 ‘salad bowl’같은 유익한 공존을 내용으로 하는 다원적인 국민 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지금의 시점에서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국민상은 기존의 경직된 모습에서 새로운 속성을 자기의 것으로 하는 개방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먼저, 그것은 다양한 ‘민족성’(ethnicity)을 하나의 중심적인 내용으로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국경을 넘나드는 인적교류가 활발히 진 상황에서는 한 국가의 울타리 속에서 하나의 민족들만이 오순도순 자기들의 순백의 민족공동체를 유지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적인 다민족국가가 아닌 이른바 전통적인 단일민족국가들에서도 다양한 인종, 민족 집단들과의 공존은 이제 막을 수 없게 된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 같은 엄연한 현실에 개별 국가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원하든 아니든 간에 이미 구체화된 다민족들 간의 공존의 방식을 제도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엄밀한 의미에서 단일민족의 혈연적 공동체를 유지시킬 수 있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 이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국가들이 하나같이 ‘다민족국가’(polyethnic-state)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서둘러야 한다.
따라서 이제부터의 우리들의 국가나, 그것을 구성하는 국민들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자기들의 기본적인 속성으로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그들 국가나 국민들의 오늘의 건강한 생존을 위해서는 물론, 보다 나은 내일에의 발전을 위해서도 물리칠 수 없는 대안이다. 다양한 문화나 가치, 그리고 다양한 민족 집단과 이들의 개별적인 언어와 습관들을 그대로 하나의 국가체제 속에 공존시키는 사상과 제도를 지칭하는 ‘다문화주의’는 결코 개별 국가의 분열이나 약화를 전제로 한 대안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다양한 구성물들을 평화롭게 공존시켜 이들이 가진 개별적인 능력들 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개별 국가들의 보다 강력한 통합을 창출하기 위한 유일한 기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자기들과 함께 살아온 소수민족들은 물론, 외국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찾아 새롭게 유입되는 외국인들과 그들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서도 국가권력은 그들을 격리시키거나 배척하는 강제력보다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적주의’적 공존 작업을 우선 시 해야 한다. 이는 ‘공존을 위한 작은 국가’가 바로 새로운 국제상황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면서 그들 국가를 보다 강력한 국가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너’와의 평화적인 공존은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유일한 방책이라는 사실은, 같은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너’인 마이놀리티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유효하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현안의 하나가 바로 이 땅에 구체적인 현실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다문화적 질서와 그러한 질서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인적 구성원들 간의 공존질서를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있음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해답은 퍽 자명하다. 그것은 바로 자기와 다른 것을 존속시키면서 통합을 만들어가는 이른바 세계화시대의 통합논리인 ‘求同存異’ 의 원칙을 공존질서의 대원칙으로 확립 하는 것 이상일 수 없다.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문화를 하나의 색깔과 하나의 문화로 강제적으로 융합하려는 생각이나 정책은 오히려 다문화사회의 정착을 위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 다양한 인적집단이 견지하고 있는 여러 가지 색깔과 문화가 나타내는 다양성을 가급적 유지시켜 가면서 보다 고차원적인 사회적 통합을 엮어 내는 노력이 보다 효과적인 다문화사회의 발전을 위한 대안임에 분명하며, 이는 우리보다 먼저 다문화사회에 진입하여 공존 문제를 고민해온 다른 나라들에서 충분히 검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다양성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노력이 아닌 다양한 요소를 내재시킨 다원사회의 새로운 통합 모델을 어떻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것으로 할 수 있을 가의 여부가 바로 우리의 다문화적 적응을 판가름 가장 구체인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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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남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현) 한국민족연구원 원장
전)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