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발흥하는 러시아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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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작성일 22-09-03 수정일수정일 22-09-03 조회1,37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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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흥하는 러시아민족주의
조 정 남
(한국민족연구원 원장)
러시아민족주의라는 태풍이 또 다시 러시아권에 세차게 불고 있다.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점점 더 확대되면서 이번 사태의 본원적인 매개물인 러시아민족주의의 파고가 어디에서 그 위세를 멈출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소련-러시아로 이어지는 러시아권의 정치적 변혁의 가장 중심적인 동력으로 자리 잡아 온 러시아민족주의는 소연방 해체 이후 한동안 은둔 상태에서 깨어나, 이번에는 ‘강력한 러시아’의 건설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푸틴에 의해 다시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뭐니 뭐니 해도 푸틴이 꿈꿔온 강력한 대국 건설, 즉 러시아민족주의 발흥을 통한 러시아연방의 확대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옐친에 의한 러시아민족주의가 소연방으로부터의 분리를 위한 매개체 였다면, 푸틴의 그것은 더욱 강력한 러시아연방 건설의 위한 통합의 매개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푸틴 측이 압도적 무력으로 쉽게 목적을 달성하고 끝날 줄 알았던 당초의 예상과 달리 장기전의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음도 의아스럽지만, 침공하는 측이나 침공을 당한 두 나라의 지도자 모두가 시간이 갈수록 지친 모습을 보이긴커녕 점점 의기양양하게 되살아나고 있음도 예상 밖의 일이다. 도발자인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각종 제재로 압박하는 서방세계를 상대로 벅찬 전쟁을 이어가면서도 위축되거나 쪼들리는 기색은커녕 점점 활기차고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고, 일방적인 침공을 당해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대통령도 불리한 전황과는 무관하게 이곳저곳을 활보하면서 전 세계를 상대로 러시아에 대한 투쟁 의지를 강조하면서 의기양양한 모습을 더해가고 있다.
당초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러시아계 인구 밀집지역에 대한 자민족 보호의 목적으로 시작된 푸틴의 갑짝스런 무력침공이 이제는 일정 지역에 대한 특수작전을 한참 뛰어넘은 동서 양 진영 간의 새로운 블록 전쟁으로 장기화 되면서 급기야는 신 냉전의 서막을 알리는 또 하나의 세계전쟁으 로 비화될 조짐을 짙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러한 장기화와 세계화라는 반전은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시점부터 이미 그 씨앗을 품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가장 큰 동인으로 작용한 것은 무엇보다 푸틴이 권좌에 오른 후 적극적으로 키워온 대국주의적 야망이다. 푸틴은 2000년 러시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2020년의 헌법 개정으로 2036년까지 계속 집권이 가능케 됨으로써 과거 소련시대까지 거슬어올라도 흔치 않은 1인지배의 장기집권자로 올라섰다. 이제는 신생 러시아의 과도기적 지도자에서 러시아국민들에게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강력한 통치자로 군림케 됐다. 그는 단순한 러시아의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러시아를 더욱 강력하고 세계무대에서도 우뚝한 나라로 만들어 내어야 할 책임감마저 가진 듯하다. 소련해체로 위축된 조국 러시아의 재건과 러시아혼의 회복자가 되어 러시아와 러시아인들에게 구국의 메시아로까지 추앙 받으러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푸틴이 가진 가장 뚜럿한 정치적 야망을 찿아 낼 수 있다. 지난 20여년 간 러시아의 재건에 대한 노력을 기우려 왔고, 이에 따른 상당한 성과도 거둬드린 푸틴에 있어 이번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가 내디딘 대국주의로의 커다란 발걸음의 하나이자 보다 장기적으로는 과거 소연방으로의 회귀를 위한 야심찬 계획의 실행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의 러시아연방은 1993년에 제정된 러시아 헌법에 의해 ‘지역’ 또는 ‘민족’에 의해 구분된 ‘연방구성 주체’로 구성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구성 주체 수는 2014년 크림병합으로 추가된 2개를 포함 총 85개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83개로 인정) 푸틴은 연방 확대를 우선 소련 해체 이후 대안체제로 결성된 CIS(독립국가공동체)에 대한 영향력 확대, 즉 CIS를 러시아연방의 완전한 셰력 권으로의 편입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루려 했고, 그 첫걸음이 바로 이번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이다. 소련 해체 이후 CIS에 가맹하고 국가는 러시아를 비롯, 카자흐스탄, 타지크스탄, 우즈벡스탄, 기르기스스탄, 벨로루시, 아르메니나, 아젤바이쟌, 몰도비아 등 9개국. 소련을 구성하고 있던 15개공화국 중에서 발트 3국은 CIS성립전에 독립했기 때문에 당초부터 이에 가입치 않아(이들은 2004년5월 EU에 가맹) CIS창립협정에는 12개국이 비준하였으나, 우크라이나와 투르크멘스탄 2개국이 러시아가 소련의 유일한 후계국가가 되는 것에 동의치 않아 비준치 않았기 때문에 이 두 나라는 정식 가맹국이 아니며, 그루지아(조지아)는 2008년에 CIS에서 탈퇴해 현재는 9개국만이 남았다. 그리고 이들 CIS국가들 대부분이 러시아와 동맹 관계에 있거나 그렇잖은 경우라도 모두 친 러시아적 자세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반해 우크라이나 만은 유독 반러시아, 친서방, 친나토적인 자세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를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하게 바로잡아 보려는 것이다.
또 하나 푸틴은 그의 대국주의의 야망을 위해 슬라브족의 민족적 결속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우크라이나와의 동질성, 더 나아가 민족적 일체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무력침공의 또 하나의 배경인 듯하다.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인, 벨라루스인들과 더불어 구 소연방 내에서 민족적 뿌리를 같이 해 온 이른바 ‘슬라브 3총사’들이다. 소연방을 구성하고 있던 130여 민족집단 중에서 80% 내외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슬라브들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등의 3개의 세부 민족집단으로 나눠지고 있긴 했으나, 이들 민족집단은 보다 큰 슬라브족이라는 민족공동체에 뿌리를 공유화고 있는 동일의 민족 집단이라는 자의식을 모두가 강하게 공유하고 있는 ‘형제 민족’ 내지는 동혈 민족집단이다. 이들 중 우크라이나인들에 국한해 볼 때, 구소련 지역의 우크라이나인 총수는 소련 전체인구의 16.2%인 43,347,000명(1979년 통계)으로 이는 러시아인에 이은 두 번째로 큰 민족집단이다. 또 우크라이나의 전체인구 는 46,600,000여명으로 소련 인구의 약 18%. 그리고 우크라이나 인구의 민족적 분포는 우크라이나인이 73.6%, 러시아인 21.6% 유대인 1.3% 순으로 구성, 소련의 개별 공화국 중에서 러시아공화국을 제외하고 러시아 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을 만큼 이들 두 나라 사이의 민족적인 공유 비율이 높다. 이 같은 민족관계에서 보듯 우크라이나는 자연스럽게 소련의 ‘주인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인들에 있어서도 선호의 대상지이기도 해 소련으로서도 계획적으로 이곳을 러시아화를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행사해온 나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많은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에 살기도 하고, 우크라이나의 각종 정부기관이나 조직에 많은 러시아인들을 의도적으로 파견, 그들이 민족적 자율성 신장을 저해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을 러시아화하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펼쳐오기도 했다.
또 한 가지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서방으로의 이탈을 경계하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제2의 러시아’로서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행사해온 역할과도 연관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는 루마니아, 헝가리, 책코, 폴란드 등 동구와 접경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과의 역사적인 관계 때문에 소련의 여러 공화국 들 중에서도 가장 동구권과 밀접한 관계를 지속시켜 왔다.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은 제2차 대전 이전까지 만 해도 여러차례 이들 국가들의 지배아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서로 국경을 달리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 간의 상호교류나 이해는 퍽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우크라이나가 가진 소연방 내에서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동구세계와의 강력한 역사적 연계성은 자연스럽게 소련 시대에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함께 소련을 대표하는 두 축으로의 역할을 해 오게 했다.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함께 UN의 정회원으로 활동해 오기도 했으며, 이밖에도 UNESCO, ILO 등을 비롯한 유수한 국제기구의 독립된 회원이었다. 폴란드, 첵코, 동독, 헝가리, 루마니아, 유고 등 7개국이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 총영사관을 개설하기도 했고, 쿠바, 인도, 이집트 등은 오뎃샤에 영사관을 개설,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 특히 키예프는 소련의 또 하나의 대외 창구 역할까지 한 명실상부한 ‘제2의 러시아’였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가져왔던 이 같은 국제적인 위상, 즉 ‘제2의 러시아’로서의 위상은 소련 해체와 탈냉전기를 맞이한 지금의 상황에서도 그들의 서구로의 이탈이나 탈러시아화를 푸틴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한 동인으로 위에서 살펴본 그의 대국주의, 연방제 확대에 대한 열망과 슬라브인들이 민족적 결합 의지 등과 함께 그동안 ‘제2의 러시아’로서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우크라이나의 서구화에 대한 경계심 등이 크게 작용했음을 살폈다. 그러나 위에서 살핀 이러한 동인들에 기름을 부어 무력도발을 감행케 한 직접적인 계기는 아무래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력, 구체적으로는 나토의 구 소련 권으로의 진출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접근 등대국주의를 지향하는 러시아민족주의를 크게 자극한 것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푸틴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방 특히 미국에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시카코대학의 미어샤이머교수다. 그는 푸틴이 위대한 러시아를 만드는데 전념하는 비이성적이고 이해하지 못할 침략자라는 입장에 강력히 반발, 푸틴 홀로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시각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라이샤이머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씨앗은 2008년4월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가 나토의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발표 한데서부터 찿는다, 그때부터 2014년2월 키예프에서 ‘메이단 혁명’으로 친러 성향의 당시 대통령이 축출되자, 이에 반발한 푸틴이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돈바스 내전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는 또 2021.11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체결한 ‘미국-우크라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헌장’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본다. 그는 1962년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로 미국과 소련이 대립한 군사위기를 거론하면서 당시 미국이 지금의 러시아가 느끼는 것과 같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봐서, 푸틴의 무력 침공의 정당성을 강조 한다.
지난 2월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침공사태가 승패를 가름 치 못하고 장기전으로 이어지면서 침공한 러시아 측이나 피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