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거리 내셔널리즘

Benedict Anderson

제국의 붕괴

서기 2050년대의 역사가들이 갓 지나친 20세기를 되돌아볼 때 그들은 지금 생겨나고 있는 현상들을 2세기 이상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깊은 구조적 변동과정의 일부로 파악할 것이다. 즉 오늘날의 현상을 중세 및 근대 초기의 여러가지 노력의 결과 건설된 다민족, 다언어 그리고 다종교로 구성되어, 그 동안 위대한 전제군주에 지배되어 온 대제국 붕괴과정의 일부라고 지적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제국의 붕괴는 커다란 폭력을 수반한 것이며, 더러는 수십 년이나 이어지는 내전이나 국가대립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했다. 1770년대에 최초의 국민국가가 북미에서 생겨났으며, 그때 미국은 대영제국에 대해서 한 덩어리가 되어 저항하여 무장투쟁을 했으나 그 국민국가는 후에 두 진영으로 크게 분열되어, 19세기 최악의 유혈을 수반한 내전을 야기했다.

1810년부터 30년까지 서서히 진행됐던 스페인제국의 몰락은 현재도 라틴아메리카를 괴롭히고 있는 비인도적인 전제정치, 반란, 내란을 촉발했다.1914년부터 18년까지의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호엔촐레른(프로이센·독일제국),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로마노프(러시아제국), 오트만(오스만투르크제국) 등 각 제국이 소멸되었으며, 그 후에는 약소하고 불안정한 국민국가가 중앙 및 동유럽 그리고 근동지역에 생겨나게 되었다. 1911년 청조의 붕괴는 중국의 두 세대에 걸친 내전에의 문을 열었다. 영국령 인도의 분열, 스리랑카의 에스닉집단간의 폭력적인 대립, 베트남에서의 30년에 걸친 전쟁, 북아일랜드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내전, 유혈적인 분쟁을 수반한 이디오피아제국의 붕괴, 우간다와 자이레 등에서의 그 숱한 사건들은 외견적으로는 다르게 보이더라도 실제는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누적되어 온 역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한편 이러한 제국의 붕괴나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구조적인 변동에 반대되는 듯 보이는 것도 있다. 로마노프왕조의 붕괴 때에 중심적인 역할을 행한 볼셰비키혁명의 성공에 의해 1920년 초 레닌이나 그의 동지들은 분산되어 있던 구제국의 파편을 통합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은 스스로를 거대한 새로운 국민국가로는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장래는 내셔널리즘이 정치적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며, 자기들이 새로운 사회 모델의 한가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실제로 다민족으로 구성되는 전투적인 공산당은 중앙집권적인 통제 아래 기존의 내셔널리즘을 정치적으로 거의 무의미한 ‘문화적’ 에스니시티로 변용시켜 나갔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다. 히틀러가 이끄는 군대의 격렬한 맹공격에 크게 동요한 스탈린과 그의 동지들은 역시 전래의 내셔널리즘을 장려하는 것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전후의 번영기를 맞은 유럽은 나치 제국의 붕괴를 계기로, 스탈린과 러시아 내셔널리즘이 얼마나 커다란 역할을 했는가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스탈린이 내셔널리즘을 고취시킨 덕으로 소비에트 연방에 가맹치 않은 다수의 동구 공산주의 국가가 존재할 수 있었음과 동시에, 동구 공산주의 국가들은 민족 명칭을 그들의 국가명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후 동구 제국에 이어 유고슬라비아, 북한, 중국, 쿠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도 각각 독립하여 공산화되었다. 1979년에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기도 했고, 또 베트남에 중국이 공격을 가한다는 공산주의 국가 간에서의 최초의 놀라운 전쟁이 일어났다.이러한 사실의 역사적인 의의는 명백하다. 이는 결국 내셔널리즘의 발전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수는 있어도 그것을 영구히 추방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한 사건들이다.

이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1980년대에 스탈린 제국은 과거의 처칠 제국과 같이 내부분열을 일으켰던 것이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포르투갈을 포함한 부르주아 식민지 제국의 붕괴, 1970년대 말에는 반 세기 전에 국제연맹을 구성하고 있던 가맹국의 4배의 국가가 국제연합에 가맹국으로 자리잡았다. 전근대적인 제국을 재현하려는 최후의 시도는 중국에서 나타났고, 그 중국에서는 모택통이 스탈린과 황제의 업적을 모델로 하여, 대담하게도 청제국의 기반위에 사회주의를 형성하려 했다. 그것도 모택동은 새로운 나라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름 지어, 그의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 지배영역에 대해서 내셔널리즘이라는 수단을 강요하려 하였으나, 그것은 최초부터 무모한 시도였다.유사한 일은 1950년대의 프랑스에서도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알제리아를 프랑스 식민지의 일부로서 남겨두려는 광폭하고 잔혹한 무의미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택동의 제국도 동일하게 멸망될 가능성은 높고, 적어도 주변부에서는 소리를 내면서 붕괴해 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미 타이완은 사실상 독립하고 있으며 티베트가 그 뒤를 이을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중국의 투르크어계 지구와 몽골어계 지구도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물론 중국인의 대다수는 한민족이며, 중국으로부터의 주변 민족 이탈 움직임은 압도적인 한민족의 세력 앞에 제압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의해 두어야 할 것은 과거 150여년 사이, 중국은 통합되어 있던 시기보다도 분열되어 있던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최후의 제국이 그 이전의 제국에 비해 평화리에 사멸하고, 그 후에 어떤 고통을 남기지 않는다고 생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위험한 환상

이상과 같이 내셔널리즘을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면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와 관련된 제반 상황을 어떤 관점에서 생각할 때, 이들의 모든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먼저 최초로 최근의 일을 오해시킨 네가지의 환상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지금 진행중인 현상은 ‘단편화’와 ‘해체’라는 생각이다. 이 단편화 내지 해체라는 말에는 협박적이고 병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말들에는 1900년에 아일랜드 전역을 포함한 영국이라는 ‘통합된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수십 년 혹은 수세기의, 폭력으로 점철된 긴 세월을 우리의 뇌리로부터 제거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폭력에 의한 억압과 그에 대한 저항이 수십 년간 계속된 이후, 영국·아일랜드 조약이 1921년에 체결되어, 아일랜드 독립의 일보가 내딛게 된 이후, 아일랜드와 영국은 오히려 평온한 가운데 공존해 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일랜드가 영국에 통합되어 있던 상태가 보다 병적이지는 않았는가. 더욱이 우리가 ‘통합된’ 북아일랜드에서, 지금도 독립을 둘러싼 잔학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목도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 것인가. ‘단편화’라는 말의 배후에는 현상유지가 모두 정상이라고 하는 생각과 같이, 낙천적이고 현상 긍정적인 보수주의가 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편견은, 첫 번째 것과 연관될 뿐 아니라 또 부분적으로는 첫 번째 편견으로부터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그것은 자본주의와 시장 그리고 국가의 3자 관계에 대한 오해이다.좌익과 우익을 불문하고 무분별한 평론가들은 원재료와 노동력 자원에 한계가 있는 ‘소국’은 ‘진정한’ 나라가 아닐 뿐더러 산업대국과의 경쟁에 직면하고 또 자본주의 경제의 글로벌화 가운데 생존해 갈 능력을 ‘거의’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근대초기의 중상주의에서 출발하여, 18세기말의 미국의 연방주의자 알렉산더 해밀턴, 특히 19세기의 중반에는 독일의 국수주의자 프리드리히 리스트 등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들은 ‘대’국민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가끔 ‘경제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커다란 국내시장을 가지고, 산업화할 세계 속에서 서로 경쟁 가능한 힘을 가지는 것이 긴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에서의 수정주의자들은 이전보다 고도로 상호관련하고 있는 세계 경제에서 잘 견디어 내는데는 비교적 적고, 민족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동질적 국가가 적격이라고 본다. 즉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영국에 비해 네덜란드와 핀란드, 스리랑카나 파키스탄에 비해서는 한국, 태국, 싱가포르, 일본 등이 소국이지만 잘 하고 있는 나라들이라고 그들은 지적한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적고 동질적인 나라에서는 국가로서의 일체감이 대단히 강해, 정치적 및 경제적인 지도자가 강제라고 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도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용이하며, 또 원활한 노사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국제적인 분업체계 가운데 스스로에게 가장 적합한 산업을 선택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국내에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거대한 나라 예컨대 미국이나 인도 등은 오늘날의 경제환경에 적합하도록 국내경제의 개선을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정치적인 곤란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환상은, ‘다국적기업’이 내셔널리즘을 어느 정도 시대에 뒤쳐진 것이라고 파악하는 태도이다. 확실히,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노동임금이 높은 미국내의 공장을 폐지하고, 새로운 공장을 노동임금이 싼 베네수엘라나 잠비아에 건설함과 동시에, 현지공장의 메니져 직에도 베네수엘라인아 잠비아인을 고용하고 있는 예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실질적인 통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경영진은 압도적으로 미국의 시민이며, 미국에 살고, 정치적으로도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일본, 독일, 혹은 프랑스 등의 ‘다국적기업’에 대항의식을 불태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네 번째 편견은, 자본주의는 ‘평화’와 불가결한 관계를 즉 ‘자유시장’은 지령경제 뿐 아니라 전쟁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모든 역사적인 사실에 반하고 있다. 19세기 ‘자유무역’의 종주국이었던 영국 만큼 많은 전쟁의 당사자가 된 나라는 없다. 또 자유무역주의자의 대국 미국 만큼 20세기 후반기에 많은 전쟁을 경험한 나라도 없다. 특히 두 번의 세계대전은 그 모두가 이들 자본주의 거대국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이상 4가지의 환상 그 모두가 초보수적일 뿐 아니라 이들 환상은 대국의 유력한 지도자들이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들 환상이라고 하는 것은 지도자들에게 자기들 스스로가 진보와 평화의 사자라고 믿게 함과 동시에, 자기들의 적은 ‘협애한’ 내셔널리즘이나 분파주의, 경우에 따라서는 ‘테러리즘’을 행사하는 불손한 사람들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심는데 일조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견해는 대국의 의사를 강요하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강대한 군사력을 자유자재로 행사하는 것을 허용하고 말게 된다. 이런 사례의 한가지로, 1975년부터 1980년에 걸쳐 인도네시아가 행한 구포르투갈에 대한 유혈적인 무력 ‘통합’을 들 수 있다. 통합에 수반한 전쟁으로 도민의 3분의 1이 희생되었다. 오늘날에도 이 ‘통합’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강해, 1991년 11월 델리에서 대담한 저항을 만나서 어려움에 처한 자카르타정부는 반대자를 ‘분열주의자’, ‘분리주의자’, ‘반 인도네시아분자’로서 억압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카르타 정부가 동티모르로부터 손을 떨고, 비참한 상태에 있는 용기있는 섬사람들에게 주권을 맡긴다면, 단번에 모든 폭력은 소멸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근대의 상상물

내셔널리즘이 가진 충격력 혹은 그 정도의 힘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내셔널리즘의 갈래인 ‘에스니시티’(ethnicity)가 가진 힘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가. 또 양자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이것들에 대해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설명 방법은 두 가지이나, 이들 모두 엄밀한 과학적 검증을 거쳤다고는 볼 수 없다.

그 하나는, 이들 현상을 경제적인 불만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자연히 생성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많은 민족주의 운동이나 에시닉 운동이 이러한 불만을 기초로, 또 운동의 구실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불만이 가끔 서로 대립하는 사회운동인 사회주의, 공산주의, 종교적 원리주의, 至福千年主義 운동에 점화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들 경쟁상대의 대부분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이데올로기적 동원력을 상당 기간은 잃어버린 듯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내셔널리즘과 에스니시티가 이러한 운동이 작용하던 장소에 진입하여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다. 오늘날 동구에서 많은 이러한 ‘진입’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과거의 전형적인 스탈린주의자가 시끄러운 민족주의자로 변신할 정도다.

또 하나의 해석은, 원래는 내셔널리즘이나 에스닉 운동의 정치적 주도자들에 의해 제창된 것으로, 내셔널리즘과 에스니시티는 뿌리깊고 오래된 역사적 기억과, 그것에 근거한 전통적인 커뮤니티가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운동은 근대적 발상 가운데서 생겨난 것으로, 이들 운동의 기원을 추적하려고 하더라도 겨우 18세기 종반의 25년 정도까지가 한도로, 그 이전까지를 소급하여 그 기원을 추적하기는 불가능하다. 내셔널리즘과 에스니시티에 오늘날과 같은 힘을 부여한 것은 특히 그것들이 가진 근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셔널리즘과 에스니시티를 만들어낸 요인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로, 이들 모두 자본주의의 출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들 요인은 매스커뮤니케이션과 대량이민이다. 19세기까지는 가장 발달된 국가들의 경우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읽고 쓰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대체적으로 선조들이 생활하고 있던 장소 근처에서 자기들도 생활해 왔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최초에는 유럽에서, 다음은 미국에서, 그리고 대단히 빠른 속도로 여타 세계를 변화시키고 말았다.

자본주의는 근대초기에 이미 인쇄기술의 발달로, 각 지역 특유의 언어로 책을 출판함으로써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냈다. 특히 19세기에 대중지가 출현, 당시까지와는 달리 책을 읽는 중산계급뿐 아니라, 당시 증가하기 시작했던, 과거의 소작인들과는 달리, 공장이나 새로운 도회의 환경에서 제대로 잘 적응하여 살아가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노동자계급에게도 많은 신문이 팔려나갔다.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징병제의 확대와 근대병기의 조작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인재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던 정부는 정치적 지배자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통일된 검정교과서나 표준화된 커리큘럼, 통일시험을 이용한 근대교육제도의 확립에 뛰어들었다. (특히 제국주의는 이들 제도와 습관을 급속하게 식민지에 확대시켰다.)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대중민주주의의 보급과 병행하여, 출판자본주의가 미디어를 통해서 대중에게 영향을 미쳐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 즉 국민국가의 상상을 뇌리에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발달에 수반하여, 이 움직임은 한층 강화됐다. 특히 먼거리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꼭 공통어에 정통하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메시지를 전달해 나갔으며 또 그 메시지는 인쇄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회화적인 친근함과 시각, 청각에 의한 즉흥적인 영향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대량이민과 세계시장

대량이민은 근대 초기가 되면 새로운 특징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의 이주라는 것은 재해나 전쟁에 의해 촉진되었다기보다는 신속하고 또 안전한 장거리 수송수단의 엄청난 발달에 의해 크게 자극되어 확대된 시기였다. 17세기와 18세기, 19세기를 통하여 수백만의 유럽인들이 자유이민으로서 또 수백만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서 대서양을 넘어 미대륙으로 건너왔다. 19세기에는 시장의 힘이나 국가정책에 유발되어, 이상할 정도로 많은 수의 비유럽계 이민이 대륙에서 대륙으로 이동해 왔다. 중국인들이 캘리포니아와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에, 그리고 인도인들이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에,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나라들에서 사람들이 이주했다.

현대는 특히 그 움직임은 확대되고, 그것도 기차, 버스, 비행기 덕택으로 속도가 가속되는 경향이 있다. 캐나다의 한국인, 이탈리아의 필리핀인, 일본의 태국인, 독일의 터키인, 영국의 서인도인, 프랑스의 알제리아인은 적어도 수십만이라는 단위로 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 모국에서 정치적인 억압에 의해 그곳을 떠나온 사람들도 많기는 하나. 대다수의 이민들은 그와는 다른 요인, 즉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빌면, 평화와 질서의 힘인 시장에 의해 ‘끌려온’사람들인 것이며, 그러나 시장의 힘은 여전히 최대의 위험 요소라는 사실을, 모든 현대사가 알려주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시장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인간의 신체는 다른 상품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곡물이나, 금, 고무나 직물, 석유화학제품이나 실리콘 등과 같이 거래되고는 있으나, 인간에게는 기억이나 습관, 신념이나 식 습관, 음악이나 성욕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이들 특징이라고 하는 것은 각각이 태어난 장소에서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으며, 특히 의식되는 것은 아니나, 현대세계를 유랑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는,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의 스코틀랜드 사람들이나, 스페인 사람과 언어나 종교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미주에 살고 있으면서 모국을 본 적이 전혀 없는 스페인어계 사람들과 스코틀랜드인 자손들 사이에서 최초로 내셔널리즘이 발전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세계의 중심에 있는 유럽인은 이들을 경멸하여 이민이나 혼혈자를 의미하는 ‘크레올’이라고 부르기도, 또 단순히 ‘식민지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유럽인이 아닌 유럽인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미대륙의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모국인 유럽 땅에 대한 애정을 내포시켜, 스스로를 멕시코인, 베네수엘라인 내지는 ‘아메리카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미주의 유럽인들은 후에 다른 장소에 이주한 사람들에 비하면, 확실히 행운이었다. 확실히, 유럽 중심 나라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뒤떨어졌다’고 보일지 모르는 일이나, 미주의 사람들은 어쨌든 간에 ‘백인’이며, 유럽 언어를 말하고, 유럽의 종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도인이나 흑인 혹은 아시아인과 같이 지독한 차별을 받지도 않았다. 특히 그들은 유럽 중심부의 시장이 확대에 따라 바깥으로 유출당했으나 이주한 곳에서 다시 고국으로 다시 되돌아올 필요는 없었다. 미주의 양 대륙에서 그들은 급속하게 선주민들을 지배하여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심부로부터 독립한 후, 그들은 영국 혹은 스페인 이외의 유럽에서, 새로운 대량의 이민을 불러들여, 스스로의 지배적인 지위를 한층 견고히 했고, 노동력 부족의 환경 속에서 자본의 축적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이런 식민지화의 방법을 계승한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캐나다, 남아프리카였다. 그 후 모든 이민은 주변부로부터 중심지역으로 옮기게 되었으나, 중심지역에서의 비유럽계 이민은 낮은 지위에 머무룰 수 밖에 없었고, 그 모양은 ‘뒤떨어진 유럽인’에 비하면 훨씬 더 지독한 것이었다.

새로운 아이덴티티

이러한 현대의 시장지향적인 이민의 규모와 이동의 속도는 과거 이민이 대체적으로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을 위해 천천히 동화시킨다는 전통적인 이민정책을 더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 크게 다른 이질의 환경에 직면하여, 이민이 도덕적, 경제적인 도움을 서로 나누며, 그 결과 베를린과 상파울루, 마르세이유 등에서 크고 작은 집단거주 지역을 형성, 거기서 군집하여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기묘한 방법으로 이민의 모국까지 마의 손을 뻗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민자들은 그들이 떠나온 고국 생각이 나면 언제나, 당초 모국에서 그들을 태워온 것과 같은 선박, 기차, 버스, 비행기로 간단하게 모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귀국한다고 하더라도 텔렉스와 전화, 우편 등 이전에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이주선과 ‘접촉’을 계속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최종적으로는 이주선에 영주하고 말게 되는 것이기는 하나 처음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영주의 땅을 찾아 이민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해 일시적으로 이주하려는 꿈을 꾸게 된다.

이민자들이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은, 출신지역과 가정의 기억만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그들 이민에 대해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상상하듯이, 독자적인 방법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이름도 모를 독일의 공업도시에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온 외국인노동자의 방안 풍경이 생각난다. 그 애처로운 작은 방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단지 루프트한자 항공이 대량으로 인쇄한 그리스의 파르테논에의 여행을 선전하는 포스터가 한 장 달랑 벽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독일어로 ‘태양이 작열하는 그리스에서 휴가를’이라고, 포스터를 보는 사람을 그리스로 유인하는 문장이 인쇄되어 있었다. 분명히 이 루프트한자 광고속의 파르테논은 낙망하여 있는 이 방 주인 노동자의 현실의 기억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 포스터로 고국 ‘그리스’를 생각, 그리스인으로서의 ‘에스니시티’를, 이곳에서 유지하기 위해서 포스터를 벽에 걸어 놓은 것이리라.

또 한편, 수천의 이민이 정착한 커뮤니티가 출현함으로써 그들이 독자적인 에스니시티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하다. 예컨대 1962년에 알제리아 독립 후 무일푼으로 도망가 말타인, 이탈리아인, 스페인, 레바논인 등의 피를 이어 가면서 프랑스에 귀화한 알제리아인은 어느 프랑스인보다도 자기들을 프랑스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 독일에 있어, 최근의 폭력활동을 지탱하고 있는 네오나치와 스킨헤드, 영국에서의 내셔널 프런트, 미합중국에서의 ‘화이트 파워’ 과격파 등은 그들을 진정한 독일인, 영국인, 미국인 등의 ‘에스닉’으로 부르고 있으나, 그들도 상당 부분은 현대세계의 자본주의에 의해 대규모적으로 만들어진 노동자의 이동 현상에 대한 반응에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국민과 싸우는 국민군

내셔널리즘 발생 초기부터 국민주권과 내셔널리즘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그 국민주권을 실제로 보장하는 것은, 국민에 의한 군대는 사고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일본 등의 중심적인 선진국에서마저, 국민군은 곧 국내 정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약소 주변국가의 중장비하고 또 국외에서 훈련을 받았던 군대는 19세기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정치에 관여한 사례가 많았다. 오늘날의 세계는 외적과 싸우지 않고, 자국 내의 동포시민들과 싸움을 계속하는 국민군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내부로 향한 경향이, 특히 구식민지적이었던 주변국에서 강한 이유는 여러가지 있으나, 아직도 농업에 의존하고 있는 빈곤한 약소국에 있어서는 군대에 필적할 수 있는 대항력이 사회에서 자라나지 못했기 때문에 국내 정치에 즉각 군대가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 그리고 이 밖에도 군대의 국내정치 개입은 식민지로부터의 자립 과정 그것이 원인의 또 하나가 되고 있다. 식민지 정부는 식민지에 현지인의 군대를 만들 때, 처음부터 국내의 치안대책을 고려하여 현지인들을 훈련시켰다. 예컨대 비루마 소총부대는 영국영 비루마 영토 내에만 파견돼, 영국통치에 저항하는 현지의 비루마인과 싸우도록 운명지워졌다. 또 분명히 정치적인 이유로 군대를 구성할 때 에스니티에 커다란 주의를 기우리면서, 우호적인 마이너리티나 기독교들을 군인으로서 선발해 왔다. 즉 인도에서는 ‘상무종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쿠르드족 등), 비루마에서는 카렌족, 알제리아에서는 벨베르족, 나이지리아에서는 이보족 등이 선발되고 있었다. 때문에 주권의 인도 때에는 가장 중요한 국내조직인 군대를 통괄하고 있는 에스닉 마이너리티와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발된 의원과 국민정부를 기반으로 한 나라를 통치하려는 메이저리티 흑은 상대적으로 다수의 사람들과의 사이에는 가끔 화해 불가능한 가공할 대립이 생긴다. 군대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국민정부는 언제나 군의 중심부에 메이저리티 그룹의 인재를 임명, 군대의 통제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언어상으로는 민족평등의 내셔널리즘을 주창하고 있으나, 군대가 나라의 주변지역에 파견되는 것은 실은 특정의 에스닉집단에 지배된 권력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일은 특히 진기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현상에 대한 불만이나 반감이 에스니시티 혹은 인종에 따라 집단적인 대립을 일으키게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세계 주변부에서의 분쟁은 초 대국의 대리전쟁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최신병기를 국민국가의 지도자가 아닌 매수인 즉 게릴라, 반역자, 테러리스트, 반테러리스트 등의 손에 넘기게 되었다. 특히 라이벌 관계에 있는 초대국이 지배력을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자기들에 가까운 이들 매수자에 병기를 양도하는 것에 양 초강대국은 열심이었다. 우리는 소연방의 영향 아래 있던 아프가니스탄과 앙골라, 쿠바에 대한 미국의 활동이나, 미국의 영향 아래 있던 남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의 소련의 대체 태도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으며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다. 이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기에 걸쳐 제국주의가 이들 식민지라는 울타리 속에, 다종다양한 낡은 정치집단, 민족언어 집단, 종교집단을 강제적으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사 연구로 저명한 올리버는 19세기 최후의 25년간의 대륙 ‘분할‘은 실은 “1만 이상으로 분립되어 있던 인간집단을 무자비한 정치적 힘으로 무리하게, 오직 40집단으로 병합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그 만큼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생긴 독립국가가 외부로부터의 에스닉한 감정의 조작에 대해서, 각별히 민감하게 대응하는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원거리 내셔널리스트의 출현

현세계는 대단히 심원한 경제적, 사회, 문화적 힘을 선진적 ‘민주주의 국가’ 정치지도자들까지도 그것을 충분히 통제할 수 없다. 런던에서 5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벨파스트의 경우, 영국이 북아일랜드의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에 대해서, 대단히 세련돼 반란 진압작전을 반복하여 왔음에도, 또 마거렛 대처 전 총리와 같이 공격적인 지도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벨파스트는 과거 25년간 무장한 요새 그 자체였다. IRA가 살아남아 있는 것은 그곳의 내셔널리스트들과 전술의 성공에서 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내부에 IRA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음과 동시에, 무기를 국제 군수시장에서 구입, 리비아나 중근동에서 훈련을 받거나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 베오그라드는 유럽에서도 가장 유력한 나라 독일의 수도이며, 유럽공동체의 중심인 베를린에서 천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있다. 그러나 베를린이나 EC 그리고 미국 또한 구유고의 붕괴에 수반한 내전을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베오그라드는 형식적으로는 ‘국민군’의 본부로 여겨지고 있으나, 그 국민군은 일방적으로 세르비아인들이 지배하는 것으로, 지금도 그러한 형편은 마찬가지이며, 때문에 이들은 유고슬라비아를 위하기보다는 세르비아인을 위해 기능하고 있다. 그런 한편 크로아치아인 지도자들은 국제 군수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세계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크로아티아인 커뮤니티로부터 상당한 자원을 결집시키고 있다.

이같은 전반적인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내셔널리즘이 시대지체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은 도대체 이야기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 150년 이상에 걸쳐 전쟁이나 정치적 억압과 같은 다양한 상황에 의해 생겨난 수많은 이민의 경험에서 보면 어떤 사람들이라도 어느 나라에 영주하게 되면 그 나라를 조국 혹은 모국이라고 생각, 국민감정을 자연히 간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낡은 생각을, 뿌리로부터 뒤엎었다고 해야 좋을 것이다. 특히 근래들어 먼 이역에 이주하여 살면서도 각기 자 민족집단 고유의 단결력과 공동체의식을 강하게 유지시켜 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셔널리즘은 또 하나의 유산체인 에스니티를 발전시키면서 이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내셔널리즘과 결합되어, 보다 먼 지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영속적인 민족집단의 단결과 발전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IRA의 열광적인 지지자인 ‘아일랜드 민족주의자’가 미국에서 ‘에스닉 아이리시’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밖에도 토론토에 정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 멜버른의 다밀인, 런던의 자메이카 출신, 시드니의 크로아티아인, 뉴욕의 유대인, 로스엔젤레스의 베트남인, 베를린의 터키인들에게서 새롭게 발흥하고 있는 에스니시티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를 만난 것인지도 모르며, 여기서 우리는 그들을 ‘원거리 네셔널리스트’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사람들은 법률상으로는 현 거주지 국가에서 시민권을 얻어 쾌적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국민이나, 실제로는 주재하는 나라에는 거의 애착을 느끼지 못하고, 그곳에서도 여전히 팩스 등의 통신기술의 발달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게 된 그들의 상상의 고향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일에 투표 이외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면서 참가하는 것으로, 아이덴티티를 근거로 한 정치활동에 가담하려는 유혹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권없는 참가는 어떻든 무책임한 것일 수밖에 없기는 하나 여하튼 이들 새로운 히로들은 원거리 정치에 대해서 책임을 갖지 못하며, 전쟁에 수반한 대상을 지불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또 쉽게 그들의 고국에 있는 치밀한 정치적 기회주의자들의 희생물로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기도 하다.

The New World Disorder, New Left Review No.193 (May/June 1992)

<민족연구>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