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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학살의 대륙' 아프리카를 만나다 강권찬 / 본원 연구원
민족분쟁의 대륙, 아프리카 1. 킨샤샤의 새로운 천년 2001년 1월 16일.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 대통령궁에서 경호원간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분간도 되지 않던 그 시각 얼마 후 카빌라 대통령은 쿠데타에 가담한 경호원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다. 쿠데타인지 암살인지 모호한 채 총격전 직후 킨샤사에는 개탄 카쿠디 내무장관 명의로 계엄령이 내려지고 대통령궁 주변과 주요 도로는 북한제 탱크와 중화기로 무장한 병력이 통제하고 있다. 콩고의 국경초소와 공항도 폐쇄됐다. 남미의 전설적 혁명가 체 게바라와 함게 아프리카 밀림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면서도 그 숱한 생존의 위기를 넘겨왔던 카빌라였다. 1997년 반군사령관으로‘아프리카의 도살자’모부투 정권을 전복하고 대통령으로 킨샤샤에 입성한지 만 3년. 투철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를 미국마저도 질서를 회복할 새로운 지도자라 승인해줄 만큼 중앙아프리카의 혼란은 심각한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나간 3년은 이 혼란의 뿌리가 얼마나 근본적이었는지를 확인해준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카빌라에게는 지난 30년간의 게릴라시절보다 더 힘든 고난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결국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그가 3년전 킨샤샤에 입성하였을때, 그의 운명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다. 콩고 내전은 '후투족'과 '투치족' 간 종족분쟁 뿐 아니라 정부군을 지원하는 짐바브웨, 앙골라, 나미비아와 반군을 지원하는 르완다, 우간다간의 국제전 양상을 보이며 카빌라 집권 후 지금까지 이 기간 동안만 2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의 사망은 '피의 대륙 아프리카'에서 평화가 과연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킨샤샤의 고요한 적막은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된다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날이 서있는 것처럼 매섭다. 2. 피의 대륙, 아프리카 지난 3년, 전쟁은 비단 콩고와 중앙아프리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사하라 이남 이른바 흑아프리카 권은 곧 학살의 땅 '피의 대륙'이었다. 앙골라 내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리아간 분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분쟁이 진행중이었던 지역은 기니, 알제리, 시에라리온, 수단, 소말리아와 나이지리아·카메룬 경계지역, 라이베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콩고, 코모로 등이고, 분쟁이 항상적으로 잠복해있는 나이지리아, 니제르, 차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잠비아, 짐바브웨, 레소토, 스와질란드, 마다가스카르와 케냐 등 전쟁이 휩쓸지 않은 아프리리카의 땅을 밟기란 최근에 이르러서도 그리 쉽지 않다. 반복되는 내전 영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세운 나라인 시에라리온에서는 1991년 이래 내전으로 2만명 이상이 숨지고, 인구 450만명 가운데 절반이 고향에서 쫓겨나거나 이주한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반군이 "투표를 못하게 하겠다"며 무고한 주민들의 팔을 자른 잔학상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반군은 무기를 버리고 정부에 합류하는 대가로 4개 부처의 장관과 차관 자리를 각각 차지하게 되며, 내전중에 저지른 살인, 납치, 성폭행 등 잔학행위에 대해 처벌받지 않게 된다. 지난해 10월 반역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RUF 지도자 산코는 광물자원과 재건을 감독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아 실질적인 부통령 노릇을 하게 된다. 아마드 테잔 카바 시에라리온 대통령과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 지도자 포데이 산코는 토고의 수도 로메에서 나이지리아, 부르키나 파소, 라이베리아, 토고 등 주변국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8년에 걸친 내전을 끝낸 것도 잠시 서로간의 증오심은 평화협정의 사인이 시작되는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반군지도자 산코가 체포되고 새로운 반군지도자가 다시 등장하고 또 한번 정전안은 합의되지만 그것이 평화를 보장할 것이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제사회의 '평화강제'가 진정제 역할을 할 뿐이다. 또다시 국제전의 포화 2000년 7월, 아프리카 동부의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에서는 전투기와 미사일까지 동원된 격렬한 국경분쟁이 벌어졌으며, 전쟁은 인접한 소말리아로 번져가고 있었다. 에리트레아가 2월 에티오피아에 내준 티그레주 바다메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전면공격에 나서며 또다시 전쟁은 촉발되었다. 에리트레아는 소말리아의 군벌 후세인 아이디드로부터 무기와 훈련지원을 받는 한편, 케냐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는 에티오피아의 반군인 '오로모해방전선'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에티오피아는 3천명의 군대를 소말리아 국경 너머에 들여보내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또 아이디드에 대항하는 소말리아반군 라헨웨인저항군(RRA)을 지원해 이달 초 중남부 도시 바이도아를 탈환한 데 이어 계속 남쪽의 코리올레로 밀고 들어가 곳곳에서 난민 탈주사태가 벌어졌다. 20만이 동원되었던 1999년의 전쟁이후 최대규모의 전면전이었다. 아군인 적국의 반군을 포함해도 압도적 무력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오히려 그것이 전쟁개시의 충분조건이 되었다. 균형을 깨뜨리는 건 선제공격, 그것도 전면전이어야만 한다. 그만큼의 출혈은 감수해야 했지만 말이다. 아프리카의 내전의 특징은 바로 이런 것이다. 평화와 정전의 반복, 그리고 지속되는 전쟁. 잔인한 학살과 뿌리깊은 증오의 확대재생산. 국제사회의 압력은 이를 잠시 멈추게 할 수 있지만 위기는 항상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어느 한쪽의 압도적인 승리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은 아프리카 분쟁들의 비극적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건 주변국들이 상대방의 반군을 지원함으로써 '무력의 세력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또다시 반복되는 소모전속에 평화협상과 정전협상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희생자는 늘어나고 있다. 아프리카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종교로의 도피마저도 그리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하긴 아프리카에 기독교와 토착종교가 어우러진 종말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은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작년 우간다 남서부 카눈구 마을에서 발생한 `신의 십계회복'이라는 종말론 신도 500여명의 집단자살 사건은 아프리카에 전파돼 토착화된 기독교 종말론의 실태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전쟁과 종교의 상관관계를 보려면 아프리카를 보면 된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의 집단학살 이후 기독교 교회수가 8개에서 300개로 급증했다. 특히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 등에서는 토착 아프리카 종교와 기독교가 융합되면서 서방 기독교의 주요 교리를 부정하는 종파가 생겨났다. 심지어 80년대의 과격한 성령운동의 한 분파인 `신의 저항군'은 우간다 북부에서 현 정부를 몰아내고 국민들을 믿음의 길로 이끈다는 명분 아래 무력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제 아프리카에서 종교는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죽음의 사신'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아프리카인에게 마지막 출구마저 봉쇄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왜 아프리카는 죽어가고 있는가 1. 제국주의 식민유산 전세계 민족, 종교분쟁의 3분의1 이상이 벌어지는 아프리카. 현재도 아프리카 53개국의 절반 이상이 분쟁에 휩싸여 있다. 문제는 분쟁들이 워낙 뿌리가 깊어 해결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에 유혈분쟁이 특히 많은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의 식민 지배가 결정적이었다. 아프리카 '국가건설'과정은 곧 열강의 식민지정책과 동일한 것이었다. 다른 아시아 지역의 경우 열강이 식민화 과정은 기존 그 지역의 지배적 세력을 대체하는 양상을 띠게 된다. 곧 역사적인 지배세력이 그곳에 '국가'를 건설하여 통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지역은 수많은 종족과 부족이 중앙집중적인 국가형태를 갖지 못한 채 혼재해 있던 지역이었다. 당연히 식민화 과정은 종족 및 부족의 분포나 정치공동체에 따른 구획보다는 열강의 편의라든가 정세적 전략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는 아프리카 민족주의는 애초에 부족간 종족간 대립을 배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국가란 없는 것이었다. 국가건설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 역시 형성되질 못했다. 그들에겐 '상상된 공동체'라는 민족을 상상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유럽 제국주의에게 있어 가장 효과적인 식민통치 방식은 분할통치이다. 식민지 각 세력을 개별화 파편화 하여 대립을 조장하고 갈등을 증폭시켜 식민기구와 식민모국에 대한 저항을 분산, 왜곡 시켜야 했다. 다행히도 아프리카는 분할통치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었다. 즉, 구역 및 종족. 부족간 분리. 차별정책을 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종족들은 서로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유럽 제국주의의 식민지 건설방식과 통치정책은 곧 아프리카 제국의 독립과정으로 그대로 전이되었다. 사실 아프리카지역의 내전 가운데 대부분은 독립과정에서 획정된 자의적이고 획일적인 국경 설정에 연유한다. 식민기구가 관할하던 지역이 그대로 하나의 국가로 독립하게 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식민지배국들은 부족이나 종족 분포를 고려하지 않고 통치 영역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제국을 독립시켰다. 그것을 고려하기에는 아프리카의 종족 구성이 너무나 복잡하였다. '무책임한 철수'는 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열강의 또 다른 식민정책에 불과했기 떄문이다. 서로 다른 부족과 종족이 한 국가 내에서 공존하는 상황에서 부족간 세력 다툼은 잦아졌고, 이는 분리독립운동을 낳거나 또는 정권쟁탈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의 세력 배후에는 유럽열강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당시 아프리카의 독립국가는 남아공, 라이베리아, 이티오피아, 이집트 4개국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국가는 2차 대전후 급작스럽게 독립하게 된다. 2차 대전후 독립한 49개국가의 식민모국 분포를 살펴보면 프랑스령은 21개국, 영국령 17개국, 포르투칼령 5개국, 벨기에령 3개국, 스페인령 2개국, 이탈리아령 1개국이었다. 식민지 상황에서 국경선은 곧 프랑스, 영국 등 열강들간의 국경선에 불과했다. 2차 대전후 갑작스런 독립과정은 곧 열강의 갑작스런 철수를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했던 것은 식민정책의 변화였지 결코 아프리카 민중의 독립에 대한 열망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독립은 준비되지 않은채 갑작스럽게 찿아왔다. 급작스런 통치세력의 철수로 인한 힘의 공백은 각 종족들의 치열한 쟁투와 내전, 그리고 국경선을 재구성하기 위한 국제전으로 비화된다. 식민모국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았던 지배세력은 타도되고 새로운 지배종족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반군,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적국의 종족. 반복되는 피의 분쟁이 시작된 것이다. 몇몇의 대표적인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차드'에는 존재하지 않는 '차드인' 인구 4백5십만의 '차드'는 프랑스가 그어놓은 국경선에 따라 언어와 관습이 다른 192개 소수 종족이 모여 만들어진 나라다. 그래서 '차드'라는 국가를 형성한 것은 프랑스지 애초에 '차드'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프랑스가 철수하면서 지배적인 종족간에 정권을 둘러싼 쟁탈전은 곧 시작된다. 전체 인구 52%에 달하는 회교도인 아랍계 푸라니족은 북부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독립이후 지배세력이었던 기독교도와 흑인 사라족, 고라족 등은 남부에서 푸라니족과 대립하고 있었다. 다수종족인 푸라니족은 곧 다른 소수민족연합세력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1966년 첫 반란이후 현재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대종족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경우 내전확률은 100%에 이른다. 양상은 정권을 장악할때 까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아마 대종족이 정권을 장악할 경우 소수종족은 곧이어 분리독립운동에 돌입할 것이다. 이미 그들 사이에 '차드'에서 공존한다는 개념을 지운지는 오래다. 노예의 땅, 라이베리아 라이베리아는 특수한 경우다. 라이베리아를 건국한 것은 미국 흑인 노예의 후손들이었다. 모진 노예의 삶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미국에서 배운것은 '노예 경영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토착 흑인을 노예로 삼아 버렸던 것이다. 그만큼 내전의 과정은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쿠데타, 내전이 반복되었다. 지난 80년 육군 상사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90년 반군에게 살해된 사우엘도 대통령도 재임기간 불발 쿠데타가 30건이나 있었다. 그의 사망이후 상황은 더 혼미하게 진행되었다. 크란족, 만딩고족, 지오 마노족 등 22개 종족이 7개 파벌로 나뉘어 89년 이후 내전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15만명이 숨지고 인구 230만명중 절반 이상이 난민으로 서부 아프리카 해안을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라이베리아 경우는 사드와는 달리 지배적인 종족이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흑인노예출신의 지배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비슷한 세력을 가진 수많은 종족간의 무차별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속에 인구는 절반이하로 줄었던 것이다. 2. '민족'독재의 작동방식 사하라이남, 이른바 흑 아프리카는 1천여개가 넘는 종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 이후 상이한 문화와 상호 정치적 대립속에 살아왔다. 즉, 그들 스스로는 도저히 결합될 수 없는 인종들이 하나의 지역적 영역안에서 집결되어 공동의 시민권을 갖고 국가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국민적 통합이 심각히 결여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자연적으로 주도권을 잡은 종족이나 정치집단은 독재적인 통치를 시행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독재는 군부에 의해 담당된다. 한 국가안에서 지배적인 소수종족의 경우는 민주주의의 실시가 곧 권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또한 여타의 다수 종족을 물리력으로 억압하기 위해서는 군부를 장악할 필요가 있다. 자연스럽게 군부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 할 수 있다. 만약에 경우 국가 내외의 압력에 의해 민정이양, 내지 민주화를 약속하더라도 대부분 쿠데타로 다시 독재체제가 들어선다. 소수종족에게는 자신의 생존과 기득권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 구조의 작동메커니즘은 이러하다. 소수의 지배종족은 강력한 군부정권의 형태를 띤다. 이때 여타의 종족들은 연합하여 민주주의를 요구함으로써 종족간 대립양상은 독재-민주 대립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화가 왜곡되고 반동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제로 섬 게임에 있어 민주주의는 허상에 불과하다. 지배종족의 양보는 쉽지 않다. 양보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전반의 정치적 불안은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사하라사막 남쪽 아프리카 47개국에서 지난 30년간 발생한 쿠데타는 매년 두 차례꼴로 발생하고 있다. 그중 성공한 쿠데타만 77차례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기간 25명 남짓한 대통령 혹은 총리가 정치적 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정변의 배후에 종족간 세력 다툼이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치세력의 기반을 민족. 부족에 두기 때문에 각 정치세력간의 갈등 협의와 조종은 이미 시작단계에서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세력에게 있어 정치력이란 상대정파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으로부터 지지를 유지함으로써 엘리트의 기득권을 지속적으로 담보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아프리카 분쟁의 대부분은 인종학살과 보복적 학살이라는 고강도 무력충돌을 반복하였다. 상대정파의 권력장악은 곧 피학살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군부엘리트의 권력담당을 해당 부족은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생존의 위협을 뜻하기 때문이다. 학살과 피학살의 악순환 속에 정치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가정은 하나의 기적을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다. 투치족과 후투족간의 충돌로 대량 학살의 악몽을 겪은 르완다와 부룬디가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케냐에서도 대통령을 배출한 부족인 카렌진족과 다른 부족들간의 갈등에서 이 같은 경우를 찿아 볼 수 있다. 내전뿐 아니라 국제분쟁의 가장 빈번한 이유도 종족문제와 연관된 정치정서에 기인하고 있다. 즉 같은 종족을 탄압한다든지 혹은 정치성향이 다르다는 이유가 주된 분쟁요인이 되어 있다. 한 국가 안에서 피지배 종족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곧 이웃국가 같은 종족(그리고 그 국가에서는 지배종족)에 의해 지지 받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국가에서 민주화세력에게 위협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하나의 사슬로 연관된 거대한 체계가 형성된다. 즉 내정간섭의 일상적 구조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여기서 애국심에 대한 호소는 상황을 왜곡시킬 뿐이다. 국제분쟁은 국가간 전쟁이 아니라 사실상 민족간 전쟁, 부족간 전쟁이기 때문이다. 라이베리아, 시에라레온, 가나와 토고, 수단과 우간다 등의 분쟁에서 이러한 사레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집약해서 웅변하는 국가는 카빌라의 콩고이다. 아프리카 분쟁의 축소판, 콩고민주공화국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콩고민주공화국의 경우는 아프리카 분쟁의 모든 가능성과 두려움을 다 보여주고 있다. 독립직후 부족과 종족간 정권 쟁탈전과 분리 독립운동이 지속되는 가운데 1965년 상황은 일단락 되어 모부투 정권이 수립되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모부투는 1997년 붕괴되기까지 4회에 걸쳐 헌법을 제정 , 개정하면서 콩고민주공화국을 통치해왔다. 32년간 독재자의 전형을 보여 온 모부투 정권은 냉전기에는 서방진영으로부터 각종 지원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되면서 모부투 정권에 대한 서방진영의 지원은 축소되었고, 따라서 모부투 체제는 약화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냉전 종식 이후 제1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이 발발하였다. 1994년 인접국인 르완다에서 후투(Hutu)족과 투치(Tutsi)족간에 내전이 발생하였으며, 정권탈환에 실패한 르완다 후투족(구 르완다 정부군과 민병)은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탈출하였다. 모부투는 유입된 난민을 강제로 송환하는 한편, 약화된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르완다 후투족을 이용하여 동부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투치족을 탄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반발한 투치족 계열의 바냐물량게족은 1996년 10월 범 반정부 조직인 콩고·자이르 해방민주세력 연합(ADFL)을 결성하고, 반 모부투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르완다 정부는 모부투 정권이 르완다에서 축출된 구 르완다 정부군과 민병대를 지원하고 이용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르완다는 ADFL를 지원하였으며, 르완다와 동맹관계에 있던 우간다, 앙골라, 부룬디도 이에 동참하게 되었다. 독재자 모부투가 축출되고 독재에 항거하던 세력이 집권함으로써 콩고민주공화국에는 평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카빌라는 자신의 노선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정부 운동 당시 협력관계에 있던 르완다 투치족을 탄압하는 동시에 르완다와 우간다군 대해서는 콩고민주공화국 주둔군을 철수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카빌라의 조치에 배신감과 위협을 느낀 르완다계 투치군은 르완다, 우간다 등과 연대하여 한때 전우였던 카빌라군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였으며, 이로써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제2차 내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카빌라군과 반군간의 전투가 전개되는 가운데 1998년 9월 15일 수단은 카빌라를 지원하기 위해 2,000명의 병력을 파견하였고, 앙골라, 짐바브웨, 나미비아 등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회원국들이 카빌라 지원에 나섬으로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국제전으로 치닫기 시작하였다. 즉, 제2차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은 카빌라 진영에는 앙골라, 짐바브웨, 나미비아, 잠비아 등이, 그리고 반 카빌라 진영에는 르완다, 우간다, 부룬디가 가세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게 되었다. 이처럼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이 국제전으로 확대된 것은 동 내전과 관련된 주변 각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콩고민주공화국에는 르완다 반군(반정부군), 우간다 반군, 수단 반군, 앙골라 반군, 부룬디 반군, 그리고 콩고 반군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관련국으로서는 이들 반군을 무력화시켜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리하여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에 개입한 국가들은 각각 저항하는 반군을 소탕할 목적으로 친 카빌라 진영 혹은 반 카빌라 진영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반 카빌라 진영의 경우, 르완다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활동중인 반 르완다 후투족(구 르완다 정부군)을 괴멸시키기 위해 후투족과 적대관계에 있는 반 카빌라 투치족을 이용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우간다 또한, 카빌라 정권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 우간다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카빌라 정권에 대항할 필요가 있었으며, 따라서 반 카빌라 진영을 선택하게 되었다. 제1차 내전시의 동지가 제2차 내전에서는 적이 된 셈이다. 한편, 앙골라는 반정부 세력인 앙골라독립민족연합(UNITA)이 반 카빌라 세력인 투치족과 연합전선을 구사하고 있는 UNITA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친 카빌라 진영을 선택하였다. 부룬디는 1962년 독립이래 투치족에 의해 통치되어왔는데 후투족은 이에 반발하여 콩고민주공화국을 거점으로 반정부 활동을 전개해 왔다. 따라서, 부룬디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남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르완다 후투족을 압박하기 위해서 친 카빌라 노선을 선택하였다. 민주화는 전쟁의 시작? 평화협정이 체결되기도 하고 자시간의 평화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지만 카빌라 대통령의 암살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독재정권을 뒤엎는 것으로 시작되는 거듭되는 내전, 그리고 국제전으로의 확대, 이것은 아프리카 분쟁의 기본요소이다. 그리고 독재와 민주, 그 이면을 장악하는 것은 종족간 대결이었다. 어느 쪽이 승리하더라도 반대파에 대해 관용을 베풀기 어려운 상황에서 타협마저도 위태롭다. 민주화는 오히려 불안하다. 완전한 독재는 오히려 강요되었을 지라도 차라리 평화스럽기조차 하다. 심각한 갈등을 통해 장기독재가 막을 내리면 민주화의 여파가 정착되기 이전에 더 치열한 투쟁이 전개된다. 민주주의적 갈등의 조절기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독재정권의 몰락은 지배종족의 힘의 약화일 뿐 민주화로의 도정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화와 함께 독재정권의 몰락은 소수종족의 분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디오피아의 경우 1991년 멩기스투 정권이 무너지면서 분리 독립국가의 탄생(에리트리아)을 낳았다. 소말리아는 민족간 알력이 타종족 말살극으로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 분쟁지다. 1991년 소말리족을 비롯한 6개 씨족인 연합전선을 구축해 21년간 장기집권해 오던 독재자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를 축축했지만 이후 이들이 권력을 둘러싼 암투를 벌이면서 내전이 격화됐다. 독재의 붕괴는 내전의 시작이라는 '비상식적인 역사적 퇴보'가 일어난 것이다. 소말리아는 1992년 한해동안만 무려 35만명이 사망하면서 서방세계에 그 참혹함이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다. 3. 강대국의 외면 아프리카는 '카오스'의 세계이다. 양육강식의 밀림의 법칙이 인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홉스의 자연상태는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이제 '리바이던'은 외부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아이러니 하게도 또다시 열강의 적극적 개입을 필요로 하고 있다. 강대국의 논리가 최악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탈냉전이후 세계사적 변화는 그리 아프리카 민중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다. 강대국의 논리는 곧 자신의 국가이익을 위한 것. 탈냉전은 강대국의 국가이익을 변화시킴으로써 더이상 아프리카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다. 분쟁을 악화시키는 외적 변수는 바로 90년대 들어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 등 서방이 개입과 분쟁해결을 상대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것은 유엔 안보리가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이 지역에 개입할 흥미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입은 온전히 국가이익을 위해서다. 패권의 효율적 유지라든지 지하자원의 독점적 추출 등 직접적인 이익이 없는 곳에서는 '인도주의적 개입'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콩고의 경우를 보라. 미국은 콩고정권을 지지해 왔다. 물론 그것이 중앙 아프리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미국과 프랑스간 패권싸움이 존재한다. 프랑스는 우간다, 부룬디, 르완다에 이어 콩고에 까지 미국의 후원을 입는 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중부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 상실해야만 했다. 그리고 콩고의 풍부한 지하자원은 그대로 미국에게 넘겨져야만 했다. 게다가 오히려 열강의 개입 아닌 개입은 해악적이기조차 하다. 강대국의 국가이익은 위와 같은 경우 이외에 무기수출로 인한 단기적 경제이익을 추구하는 검은 거래를 통해 달성되고 있다. 아프리카는 열강들의 무기시장이다. 많은 양심세력은 분쟁을 해결하는 첩경은 불법 무기거래를 중단시키는 것이라 주장한다. 르완다의 종족대학살을 보면 강대국들의 무기판매를 통해 보다 '효과적이고 대규모적인 학살'이 가능해 졌다. 한편에서는 난민구호, '인도주의적 개입'이 운위되면서 밤에는 무기를 대주고 있는 혐오스런 광경이 빈번하게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감독자가 없는 상태에서 러시아, 우크라니아, 불가리아 등 구공산권의 무기가 아프리카에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갔던 것도 분쟁의 격화에 큰 원인을 제공하였다. 프랑스는 1994년 르완다의 투치적 대량학살 이후 르완다에 유엔의 무기금수조치가 시행되는 와중에서도 여전히 최대 무기 공급원 역할을 자임했다. 물론 94년 이후에도 프랑스는 무기공급 이외에 무기분배를 위해 직접군을 파견해 오랜 동맹관계인 후투족을 지원해 왔다. 혁명의 나라,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의 전파자로서 프랑스의 자부심은 유독 아프리카에서만은 예외인 것 같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냉전기에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을 통해 자이르에 쏟아 부었던 수백만 달러 어치 미제무기들이 대규모로 유통되고 있다. 미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94년 투치족이 장악한 르완다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군대를 훈련시키고 소화기들을 공급해왔다고 한다. 물론 과거 냉전시대와 같이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 양상은 이제 없다. 프랑스와 미국이 대리전을 치룰만한 관계에 있는 것도 분명 아니다. 하지만 지역에서 패권을 담보하기 위한 양 세력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내전 내지 국제전하에 있는 서로 다른 종족에게 무기를 판매하고 군대를 훈련함으로써 미, 소의 대리전 양상이 그대로 반복되었다. 과연 평화는 가능한가 아프리카에서 평화가 필요한 이유가 소박한 것은 그것의 목적이 단지 인간의 생존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다시 보라. 이제 아프리카는 '피의 대륙'에서 '죽음의 대륙'이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최소한의 요구인 생존의 보장은 아프리카의 이름없는 민중들, 노인과 부녀자, 그리고 어린이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절실하다. 지금, 아프리카에서의 평화요구는 가장 적극적인 인류애의 표현이다. 평화는 생존에의 요구 아프리카인들은 이 지역에서 분쟁과 내란이 중단과 재발을 거듭함으로써 전쟁터를 피해 거주지를 옮기는 극도의 불안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난민들은 지역과 국경에 관계없이 안정된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으며, 그 지역이 불안한 경우에는 또 다른 안전지대를 찾아가는 이른바 떠돌이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지대를 찾아 방황하고 있는 난민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엔고등난민위원회(UNHCR)가 집계한 지역별 난민시설 수용자 통계를 보면, 1998년 현재 아프리카 난민은 전세계 난민의 28.4%를 점하고 있으며, 1994년에는 46.6%에 이른 적도 있다고 한다. 즉, 1989년도 아프리카 난민 수는 461만 명에서 1994년에는 675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그후 다소 감소되기는 하였지만 1998년에도 그 규모는 327만 명에 이르렀다. 이들 아프리카 지역 난민들은 비교적 안정화된 기니아, 수단, 탄자니아, 그리고 이디오피아에 약 148만 명이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안정된 지역은 난민문제가 골칫거리이다. 그로 인해 안정된 지역이 곧 불안정 지역으로 바꾸기도 한다. 수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나머지 난민들도 비참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은 상황에서 난민들의 몸은 야위어가고 있으며,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콩고민주공화국과 앙골라, 그리고 짐바브웨에는 에이즈(AIDS)가 만연하고 있으며, 특히, 짐바브웨의 성인가운데 25%가 양성환자라고 한다. 죽음의 대륙 아프리카, 전쟁과 기아, 그리고 질병의 대륙, 아직 희망을 말 할 수 있을까. 상황은 절망에 가깝다. 하지만 최소한의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당위이자 인류애의 정언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희망은 국가, 지역, 세계라는 세가지 차원의 다층적인 접근속에서 조금씩 싹을 틔워가고 있다. 국가차원에서 보자면 탈냉전이 가져다준 하나의 선물은 독재의 종식과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많은 경우 아프리카의 신생민주주의가 걸어갈 길은 험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갈등의 합리적 조절은 민주주의라는 기제이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지역적 차원에서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협의기구,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는 아프리카 출신의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UN에 의해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훨씬 멀다. 그리고 희망이 보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멸의 위기감이 확산되어 있다는 역설적 사실, 학살과 증오의 반본적 재생산은 이러한 공멸의 위기감으로 인해 임계점에 있다는 인식에서 그 출발을 찾을 뿐이다. 1. 민주화는 평화의 지름길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민주화 과정은 보다 보수적이고 심지어 반동적이기 조차 하다.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보수적 민주화가 진행되어 간다. 하지만 이 경우 종족간의 무력대결 양상이 보다 통제될 수 있다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다 성숙한 정전단계에서 평화단계로의 전진이니깐 말이다. 지배종족에 의한 반동 쿠데타라던가 피지배 종족에 의한 무력투쟁은 양 종족의 엘리트간 협의를 통한 점진적인 민주화, 그리고 바람직스럽지는 않지만 지배종족 엘리트에 의한 위로부터의 민주화가 보다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 민주화가 보다 진전됨에 따라 피지배종족에 대한 배려와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정치양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지리아의 경우를 보자. 나이지리아는 200개의 다른 언어가 있고 (아프리카어는 모두 2천개가 된다. 그만큼 분쟁의 양태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종족수는 250여개이다. 1967년 기아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비아프라 공화국'의 주인공 '이보족'의 독립 투쟁으로 1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3년 내전을 치뤄야만 했었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북부 회교도 하우자족(27%)은 군부를 장악하고 권력을 독점해왔다. 한때 끈질긴 민정요구 시위에 굴복한 하우자족 중심의 군부정권이 민선을 약속, 대통령 선거를 치렀지만 남북 유로카족 출신의 아비올라가 당선되자 곧바로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 무효를 선언했고 그 뒤를 하우자족 출신의 아바차 대통령을 잇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오라세군 오바산조 군 최고사령관에 의해 15년만의 민정 이양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는 신임 대통령이 되었다. 밑으로부터의 열망을 보수적 형태로 수렴한 경우이고 나이지리아는 잠정적으로 상당한 안정을 이룰수 있었다. 아직 갈등을 제도화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는 못하였지만 제로 섬 게임적인 자연상태는 벗어나 상대방에 조금씩 양보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제공하는 것은 민주화다. 평화로 가기 위한 지름길은 곧 민주화다. 2. 아프리카인의 희망, OAU 아프리카최대의 수뇌회담인 '아프리카 단결기구'(OAU)는 지역분쟁을 담보할 수 있는 기구로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35차 정상회담의 경우에도 53개국 회원국 중 44명의 국가및 정부 수반들이 참여하는 기록적 참가율을 보여주었다. 수많은 내전으로 얼룩진 아프리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연대와 협력을 모색한다는 OAU의 사명감이 아직 구체적인 결실을 맺고 있지는 않다. 회원국을 중심으로 집단안보의 개념이 아직 발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제재할 수 있는 물질적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도 '아프리카 단결기구'의 존재적 의의를 부정하지 못한다.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평화협정의 중재와 이를 뒷받침 하는 보증으로도 이들의 역할은 매우 크다. 3. 국제사회의 노력-UN의 인도주의적 개입 아프리카 분쟁은 냉전 종식과 함께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커다란 주목을 받게 되었다. 냉전기를 통해 민족자결권을 주장하는 내전 성격의 분쟁들은 국제기구나 강대국의 개입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되어 왔다. 냉전구도 아래서 특히 분쟁 당사국이 지리·전략적 가치를 지니거나 강대국의 이익에 기여하는 노선을 추구할 경우, 강대국들은 중앙정부의 편에 서서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과 가혹행위를 묵인하거나 애써 외면하기도 하였다.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을 보장하기보다는, 개별국가의 주권 옹호와 내정 불간섭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국제기구의 역할도 상당 부분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탈냉전기에 들어 강대국의 개입이 현저히 줄어드는 대신 유엔과 지역기구 등 국제기구의 분쟁 조정 및 관리 기능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리고 인도적 측면에서 이제는 내전 성격의 분쟁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관심과 개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이래 세계 각 지역의 분쟁 상황이 방송,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 상세히 알려지면서 국제여론의 향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분쟁 해결을 위한 긍정적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나 서방세게는 아프리카 분쟁에 대한 원인 제공자로서 '원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자국민들로부터의 압력에 부닥치면서 강대국이 취할 수 있는 입장은 UN등 국제기구에 의한 분쟁해결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국제기구에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복잡한 상황으로 인해 비관적 전망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UN의 개입으로 인해 보다 높아졌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더군다나 아프리카 지역 전체의 불안정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국익에도 손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아직까지 분쟁의 빈도와 정도에 비해 UN의 개입은 신중하고 소극적이기 조차 하다. 사실 UN이 분쟁당사자간에 협상을 제시하더라도 당사자들이 UN이 제시한 협상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겨우 특별한 대체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평화유지활동을 전개하기 앞서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섣부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이다. 게다가 분쟁 당사자의 인접국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상황을 악화시킬 위험마저 존재한다. 이와 같은 조심성은 시에라리온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UN은 시에라리온 반군이 정전에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전을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해 정전 감시단과 평화유지군을 파병하였다. 그러나, UN은 반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평화유지군이 반군에 의해 사살되고 포로로 잡히는 사태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UN 평화유지군은 시에라리온 정부군과 합세하여 반군과 싸워야하는 불가피한 입장에 처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상황이 콩고와 같이 인접국들의 첨예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국가에서 반복된다면 UN은 전쟁참가국수를 늘리는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나오며 아프리카 데이비드 디오프 아프리카, 나의 아프리카! 대대로 물려받은 대초원에서 당당하던 무사들의 아프리카 나의 할머니가 머나먼 강둑에 앉아 노래한 아프리카, 나는 그대를 결코 알지 못하지만 내 얼굴은 그대의 피로 가득하다 들판을 적시는 그대의 아름다운 검은 피,
성급한 아들아, 이 젊고 튼튼한 나무 창백하게 시든 꽃들 가운데 눈부신 외로움으로 서 있는 바로 이 나무, 이것이 아프리카다 새싹을 내미는 끈기 있게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그리고 그 열매에 자유의 쓰라린 맛이 서서히 배어드는 이 나무가 제국주의가 심어놓은 종족 분쟁은 아프리카 전체 문제이다. 언어와 종교가 제각각인 이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1800년대 제국주의 국가들이 임의로 그어버린 국경선에 따라 한 국가로 묶이면서 나라마다 갈등의 싹들이 불거져왔다. 그것이 탈냉전이후 폭발하여 아프리카는 지금 카오스 상태다. 평화를 말해야만 하는 이유는 아프리카인의 생존이라는 최소한의 요구 그 이상은 아니라는 사실이 전쟁의 차목함을 웅변하고 있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평화를 말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적인 당위이다. 국가별로 민주주의가 조금씩 진척되고 지역 및 국제기구에 의한 중재노력이 빛을 발할 때, 절망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 아프리카인에게 아프리카는 피의 대륙, 죽음의 대륙이다. 이제야 조금씩 희망을 배우고 있을 뿐이다. 그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 그 이상은 아니다.
<민족연구 제7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