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소수민족정책

김인성 / 본원 연구원

1. 들어가는 말

1980년대 후반기의 구소련체제 붕괴과정은 급진적인 정치·경제·사회적인 개혁을 동반하였고, 구소련체제에 잠재해 있던 민족문제가 표면화되면서 민족간 갈등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 신흥 러시아가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주의 열기에 힘입은 바 크지만, 구소련 시기의 복잡한 민족구도와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현재 러시아연방의 인구는 대략 1억 5천여만 명이다. 연방은 1백여 대소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구성민족의 분포상 전체의 80% 정도가 러시아민족으로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이 타타르인으로 약 5백만, 유대인과 추바쉬인이 각각 2백만, 바쉬코르트인이 약 150만, 우드무르트인이 70만, 마리인이 60만 명 등이다.

러시아연방에는 공화국과 연방도시, 오블라스트 및 오크루그로 구성되는 89개의 지역정부가 존재한다. 행정구역은 영토 및 민족단위에 기반하여 구획되었는데, 이들 중 32개가 민족단위 지역정부이다. 러시아연방정부와 이들 민족단위 지역정부 사이에는 정치·경제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민족간 관계의 양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각 지역정부 특히 민족단위 지역정부와 하위 소수민족간에 존재하는 민족문제가 하위수준의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연방 전체 차원에서의 민족문제는 그 복잡성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본고에서는 소수민족의 법적인 지위와 권리의 문제 및 소수민족의 정치·사회적 지위의 현실을 살펴봄으로써 러시아연방 정부 소수민족 정책의 현주소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2. 러시아연방 소수민족의 법적 지위

1. 소수민족의 기본권에 관한 헌법상의 보장

러시아는 아직은 독립의 역사가 짧고, 합의된 민족적 정체성이 결여된 상태이다. 이를 둘러싼 논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소수민족 문제는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수준에서 법제화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행 헌법은 비록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나마 앞으로 제정될 구체적인 법률의 지침이자, 연방 내 소수민족의 지위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근거로서 역할한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연방 헌법은 기본적으로 민족간 평등이 보장됨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19조에 따르면 “정부는 성별과 민족·언어 … 등과 관계없이 개인과 시민의 평등과 자유를 보장한다. 사회·인종·민족·언어 혹은 종교를 이유로 한 평등의 제한은 어떠한 형태를 막론하고 금지한다”고 되어 있다. 한편 헌법 29조에서는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대해 명시하면서 “사회적·인종적·민족적 혹은 종교적 증오와 적개심을 조장하는 선전과 선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회적·인종적·민족적 혹은 종교상의 우위는 금지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 13조에서는 정치사상의 다양성을 용인하면서 “러시아연방의 단일성을 약화시키거나 현존 정치체제의 기반을 폭력적으로 변경, 국가안보를 위협, 무장단체를 형성, 사회적·인종적·종교적 불화를 조장할 목적이나 실천적 의도를 가진 공공단체의 조직 및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형법 74조에서는 민족적·인종적 적개심과 증오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 형사적 책임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문화적 권리와 관련해서는 헌법 제26조에서 “각인은 스스로 소속 민족을 선택하고 밝힐 권리가 있다. 각인은 고유의 민족언어를 이용할 권리와 의사소통·양육·교육 및 창작 활동에 자유롭게 언어를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헌법 제17조에 따르면, “러시아연방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국제적 권리의 원칙 및 규범에 입각하여, 그리고 현행 헌법에 따라 개인 및 시민의 권리와 자유가 인정되며 보장된다”고 밝히고 있다. 아직까지 소수민족 관련 법규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 조항은 소수민족들이 자신의 권리보호를 위해 국제법이나 관습에 호소할 수 있는 기반으로 역할할 수 있다.

2. 소수민족의 시민권 보장

민족자치 지역을 형성하지 못한 소수민족 및 러시아연방 영토를 포함한 구소련지역의 민족분쟁으로 인한 국내적, 국제적 난민 문제는 러시아연방이 안고 있는 민족문제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 시민권 자체를 부여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데, 소수민족에 대한 시민권 부여의 제약은 곧바로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연방 시민법 13조에 따르면 “구소련 시민권자로서 시민법이 발효하는 시점(1991. 11. 28)에 러시아연방 영토에 영구거주하는 모든 자는 러시아의 시민으로 인정된다. 단, 금후 1년 안에 러시아연방 시민권을 거부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이 법조항에 따른다면 구소련시민으로서 러시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소수민족은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시민권과 관련된 소수민족 보호의 토대는 갖추어진 셈이다.

3. 소수민족의 문화적 권리 보호

1996년 5월 22일 러시아연방 의회는 「민족문화적 자치단체에 대한 연방법」을 채택하였다. 만일 국제조약이 법안에 명시되지 않은 권리를 담고 있을 경우 국제조약이 적용된다. 이 법안에서 다루고 있는 자치단체는 러시아연방 시민의 사회적 결사체로서(제1조), 민족영토적 자결권과는 무관하다(제4조).

동법률 제3장(제8조∼제12조)은 민족 언어의 보존과 발전, 그리고 사용에 대한 보호 및 정부의 지원을 보장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민족 언어에 대한 사회적·경제적·법률적인 보호를 제공하며, 러시아연방시민은 언어의 보존, 발전 및 사용에 있어 자유로운 선택을 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제8조). 제12조에 따르면 “민족문화적 자치단체의 제안에 따라 정부 교육기관은 민족 고유언어와 러시아어를 통해 민족 역사 및 문화교육을 실시”하게 되어 있다. 제4장(제13조∼제15조)은 소수민족 문화의 보존과 연구를 위해 정부가 필요한 지원을 할 것음을 명시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종교적 자유에 대한 구체적 법안도 마련되었다. 1997년 9월 19일 러시아 두마는 「양심과 종교적 결사의 자유에 대한 연방법」을 채택하였다. 이 법률 제3조에 따르면 “러시아연방에서는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 러시아연방 정부의 시민은 종교 및 그 소속에 관계없이 시민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삶의 모든 분야에서 법앞에 평등하다”고 되어 있다. 제3조에 따르면 모든 종교는 평등한 지위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 법률의 서문에서 러시아 정부는 세속적 정부임을 밝히면서도 “러시아 정교는 러시아의 역사, 그리고 러시아의 정신세계와 문화의 형성 및 발전에 기본적인 역할을 함을 인정한다”고 밝히고 “러시아 민중의 역사적 정통성과 분리될 수 없는 기독교·이슬람교·불교·유대교 및 기타 종교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법률의 서문이 법적 효력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특정 종교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구체적 종교 명칭을 거론함으로써 러시아 정부가 호의를 가지고 대하는 종교와 그렇지 못한 종교를 구분하고 있다는 의혹의 여지도 있다.

4. 토착 소수민족에 대한 권리의 보장

헌법 제69조에 따르면 “러시아연방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원칙과 국제적 권리 및 국제조약의 규범에 따라 토착소수민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 헌법조항에 대한 세부법안은 1999년이 되어서야 마련되었다. 1999년 4월 16일 러시아연방 의회는 「러시아연방의 토착 소수민족의 권리 보호에 대한 법안」을 승인하였다. 제1조에 따르면 이 법안에 의해 보호를 받는 대상은 “러시아연방 영토 내에 조상 대대로 거주하면서 전통적인 농업·공업·생활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총인구 5만 이하의 소수 토착민족”이다.

제5조와 6조에서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토착 소수 민족의 사회·경제 및 문화적 발전, 이들 언어의 발전, 보존 및 부활, 그리고 토착 생활터전 및 전통적 생활양식, 그리고 토지 및 기타 자연 자원의 경영과 사용의 보호를 위한 프로그램의 도입”에 대한 권리가 토착 소수민족 관련 정부 조직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제5조 9항에서는 “러시아연방 지방정부 및 지역자치정부에 의하여 강제적 민족 동화나 민족 학살, 토착 생활터전의 환경파괴 등을 금지할 조치를 입법화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제8장은 토착소수민족의 권리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이들 민족은 토착 영토의 사용 및 관리에 대한 권리, 연방 및 지역정부로부터 물질적·재정적 도움을 받을 권리, 미성년자의 교육과 양육을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을 권리, 무상의료 및 사회복지를 받을 권리 등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토착 소수민족의 생존권 및 문화적 발전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방편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 정책수행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이를테면 재정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마련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소관이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조직간 역할 분담에 대한 조항이 부재하다. 이는 재정지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임 소재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양자 모두가 정책수행에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3. 소수민족의 사회적 지위

1. 소수민족의 기본권 보장 문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과 관련하여 토착 소수민족을 포함한 자치지역 보유 소수민족들의 권리침해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 외의 경우는 상당한 정도의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토착소수민족 및 자치지역보유 소수민족들의 권리 신장과 관련하여 많은 러시아인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러시아연방 내에서의 그들의 지위의 하락에 대한 불안감마저 느끼고 있다. 둘째, 러시아연방 내의 민족 분쟁 및 테러, 그리고, 정치·경제적 불안정과 관련하여, 러시아인들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관계없이 관련된 혹은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소수민족에 책임의 소재가 있다고 여기고, 이들을 끊임없이 비난하는 정서를 보유하고 있다. 셋째, 이는 러시아 민족주의 정서와 상호작용하여 타민족에 대한 반민족감정을 고양시키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정서는 비러시아 소수민족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유사한 민족주의적 정서가 그들 사이에도 만연되어 있다. 따라서 법률상의 기본권 보장에도 불구하고, 민족간 접촉이 이루어지는 지점에서는 소수민족에 대한, 혹은 하위 소수민족에 대한 기본권 침해가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기본권 관련 소수민족 권리침해는 기본적으로 서로 긴밀히 관련된 세 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첫째는 극우민족주의 집단 등에 의한 민족차별적 행위이고, 둘째는 경찰 등 공안기관에 의한 민족차별 행위이며, 셋째는 지방정부에 의한 소수민족 권리침해이다.

(1) 극우민족주의 집단에 의한 소수민족의 기본권 침해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사실상 이러한 사례는 다른 국가에서도 자주 발생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사례의 방대함과 함께 사법당국 및 경찰공무원의 관용적 태도 혹은 직접적 가담의 측면에서 큰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에는 ‘러시아인민해방운동’, ‘민족전선’, ‘러시아민족연합’ 등을 위시한 수십 개의 극우민족주의 집단이 활동하고 있다. 대개 15세에서 20세 초반까지의 젊은층들로 구성된 이들 집단은 나찌즘과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수용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소수정예 멤버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의 견해에 동조하는 러시아인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이들은 러시아 민족주의 정당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서 논리적 일관성을 찾기는 힘들지만, 대체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러시아민족은 러시아연방 내에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우월하다. 둘째,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지배적 역할을 행사해야 한다. 셋째, 러시아연방 및 그 민족에 대한 세계적 음모가 존재한다.1) 이들의 주된 표적은 당연히 비러시아 민족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외국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이 주된 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같은 러시아연방 시민인 중앙아시아 민족과, 특히 코카서스 민족이 심한 민족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 극우단체 중 일부는 히틀러의 생일 혹은 레닌의 생일에 공식적으로 행사를 치르는데, 행사당일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그 등 대도시 거주 유색인종은 대로를 다니는 것조차 금기시하고 있다.

이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지에 관한 통계는 접하기 힘들다. 이는 대체적으로 이들에 의한 민족차별 행위가 법률에 의해 처벌받는 경우가 적고, 기본적으로는 경찰이나 심지어 사법당국마저 이들의 행위에 방관자적인 입장을 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97년 6월 초 정확한 소속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극우민족주의 단체 소속이 분명한 일단의 청년들이 모스크바에서 중앙아시아계 집시촌을 습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의해 어린이 한 명이 살해되고 몇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두 차례에 걸쳐 재판이 열렸지만, 피의자의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사건은 종료되었다. 또한 같은 해, ‘러시아민족연합’ 소속원 세 명이 아르메니아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한 후 석방되었다.2)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통계로 ‘러시아외국인학생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극우단체에 의한 폭력으로 접수된 모스크바의 외국인 학생 피해사례는 겨울에는 10∼15건, 여름에는 그보다 두배 내지 세배 정도이다.3) 이들의 표적이 주로 중앙아시아 및 코카서스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비러시아 민족에 대한 폭력의 정도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지방정부가 직접적으로 극우 민족집단을 경찰업무에 관련시키는 사례도 존재한다. 크라스노다르·스타브로폴 그리고 로스토프 지역의 코작 집단은 민간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로부터 사법업무에 참가할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필요한 직·간접의 재정도 지원한다. 이들은 주로 소수민족에 대한 민족차별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2) 경찰 등 공안기관에 의한 민족차별 행위를 들 수 있다. 특히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거주지 등록제’이다. 이 제도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현행 헌법상 이주 및 여행의 자유가 명시(제27조)되어 있고, 1993년 6월 25일 발효된 「러시아연방 내 체류 및 거주지역의 선택과 여행의 자유에 관한 연방법」에는 여행과 이주시 ‘거주지등록’을 명시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민의 권리와 자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거주지 등록의 유무에 의해 시민의 권리나 자유가 제한될 수는 없다는 점을 밝혀두고 있다(제3조).

또, 연방 조례에 따르면 러시아연방 내를 여행하는 러시아 시민과 외국인은 임시 체류 사실을 경찰에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영구 거주목적이 아닌 이유로 타지방에 10일 이상 체류할 경우에 도착 3일 이내에 경찰에 등록하고 거주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법률상 거주등록은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이다. 그러나 지방정부들은 자의적 법해석을 통해 나름대로의 거주등록 규칙을 제정하고 거주등록의 거부 명분으로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공공기관을 방문하여 공식적인 등록의 절차를 거친다는 것이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몇몇 지방에서는 상당한 액수의 세금을 여행자에게 부과함으로써 금전적 부담까지 안기고 있다. 이를테면, 크라스노다르의 경우 거주등록시 최고 180루블(8천 원)에 해당하는 세금을 물리고 있다. 여하튼 거주등록없이 타지방에 체류하는 경우는 벌금을 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관련 연방법의 근본정신과는 상관없이, 타지역에 거주등록없이 열흘 이상을 머무는 사람은 범법자 혹은 범죄혐의자로 간주된다. 지방경찰은 타지역민으로 보이는 사람에 대하여 불심검문을 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법률이 정한 바를 벗어난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민족차별적인 행위가 자주 행해진다. 특정 지방에 도착한 시각이 언제인지를 증명할 방도도 마땅하지 않다. 따라서 체류기간의 증빙자료로 비행기표나 열차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대개 여행자들은 특정 지방을 10일 이내(모스크바의 경우는 3일)에 떠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왕복표를 휴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특히 외국인은 이러한 법률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혹은 거주등록에 필요한 금전상의 시간상의 손실을 우려해서 거주등록을 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 그리고 지방마다 거주지 등록제의 요건이 상이하기 때문에 거주지등록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거주등록제’를 위반하는 경우 부과되는 벌금은 지방재정에 귀속되기 때문에, 경찰들은 더 많은 실적을 올리라는 상부의 압력을 받으며, 따라서 공식적인 형태의 불심검문이 지속적으로 행해질 수밖에 없다. 한편,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경찰에 의한 비공식적 요구이다. 대개는 금전을 요구해 오는데, 여권과 거주등록, 심지어 왕복열차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 해도 이들의 집요한 트집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인 경우 대체적으로 다소간의 뇌물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사태가 마무리되지만, 중앙아시아나 코카서스 지역 소수민족이 경찰차나 골목길에서 구타당하는 사례는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모스크바의 일간지에 따르면 1997년 초기 5개월 동안 모스크바에서만 약 150만 명이 불심검문을 당했으며, 그들중 절반이 거주등록제 위반자로 밝혀졌다. 공식적 통계에 따르면 1996년 한 해 동안 모스크바에서 5백만 건의 불심검문이 행해졌다. 비공식적인 문제해결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경찰들 개개인에 의한 민족차별적 행위가 얼마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의 가혹행위에 의한 가장 큰 피해자는 코카서스인이다. 피부색으로 인해 다른 민족들과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 민족주의적인 정서는 이들을 이슬람 테러분자 내지 분리주의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들은 불심검문을 넘어서서 경찰서까지 연행되는 경우가 흔하다. 불심검문은 거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코카서스인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라면 집·호텔·사무실 등을 가리지 않고 검문의 대상이 된다. 일단 경찰서에 연행된 경우라면 대개 구타와 고문, 모욕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심지어 시신의 상태로 가족에게 인계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이를테면 1998년 1월 6일 타지크인인 마브주드 알리예브(당시 31세)는 경찰에 연행된 지 10일만에 자살이라는 통고와 함께 시신이 되어 부모에게 인계된 바 있다.

(3) 지방정부 당국에 의한 소수민족 권리 침해 사례이다. 이 경우는 대체적으로 소수민족의 기본생존권 및 거주이동의 자유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모스크바 등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대규모 여권검사이다. 이는 거주지등록제와는 별개의 형태로 실행되고 있는데 모스크바에서는 1993년 이후, 테러나 분쟁 등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특정 민족, 특히 코카서스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여권 검사가 실시되어 왔다. 이를테면 1999년 9월 9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모스크바에서 아파트 폭파사건이 있은 이후,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은 모든 임시거주 등록자는 3일 이내에 거주등록을 갱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용계약서나 건강진단서 등의 거주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사흘만에 준비하여 경찰서에 제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두 차례의 갱신기간 연장을 통해 10만 명 이상이 거주등록을 갱신했는데, 이들 중 2만 명이 거주등록을 거부당했다. 물론 서류가 미비한 경우도 많았지만, 서류가 제대로 구비된 경우에도 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거주등록을 거부당한 경우도 많았다. 이 사건을 통해 모스크바 거주 체첸인 거의 다수가 거주등록을 갱신하지 못했다.4)모스크바시의 이러한 정책은 분명 헌법과 관련법에 위배이다. 이와 관련하여 1998년 2월, 헌법재판소는 모스크바시의 민족차별적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 위해 “모스크바시는 단지 시민이 그곳에 살 수 있는 의지의 자유로운 표명행위를 보장할 수 있을 뿐”이며, 거주등록제도의 무리한 적용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모스크바시는 시민이 거주할 장소를 선택하는 것을 허락하거나 제한할 수 없으며, 특정 장소에 특정 기간 동안 머무를 수 있다는 명령을 내릴 수도 없다는 것이 재판소의 판결의 요지이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루쉬코프는 자신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복하며, 과거의 거주등록제를 계속 실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발표를 하였다.5)모스크바 이외의 지역에서도 코카서스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족차별 사례는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를테면 코미 공화국에서는 1999년 9월 14일 내무국장은 “코카서스인의 거주를 목격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자를 발견할 경우 사법당국에 신고하라”는 민족차별적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 트베르 농업학교 기숙사에서는 코카서스인 학생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경찰서에 연행되어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스타브로폴 내무국장은 1992년 이후 이 지역 이주 체첸인은 일주일에 두 번씩 자신의 행방과 행위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명령하였다.6)한편, 민족간 분쟁 이후 소수민족에 대한 기본권 침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례도 존재한다. 1992년 10월과 11월 두 달 동안 북오세티아(현재의 북오세티아-알라니아) 공화국의 프리고로드니 지역 내에서 잉구쉬인과 오세티아인 사이에 무력분쟁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4만여 명의 잉구쉬 난민이 발생하였는데, 알라니아 당국은 고향으로의 귀환을 원하는 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표명해 오고 있다. 심지어 난민의 귀환을 차단하기 위해 그 지역으로 통하는 도로를 봉쇄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따라서 그 지역에 남아 있거나 혹은 위험을 무릅쓰고 귀환한 잉구쉬인은 총격과 방화 그리고 봉쇄 속에서 또다시 난민의 처지에 내몰릴 지경에 처해 있다.7)지방정부 거주 소수민족을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강제이주시키려는 사례도 있다. 스타브로폴 지역의 동부와 북부지역 다르긴인과 체첸인은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들은 서로 상당한 거리상의 격차를 두고 분산되어 있는 오두막에 살고 있다. 러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목축업이 이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이 되자, 이 지역 정부와 기업 대표들은 이들 소수민족을 민족 소속공화국으로 쫓아내기 위하여 전기와 연료의 공급을 중단하는 한편, 이들의 자녀가 이용하는 통학버스의 운행을 중단하였다. 1994년 이후 이 지역 학교들의 폐쇄가 계속되고 있으며, 이 지역 학생의 50%는 교육의 혜택들 받지 못하고 있다.8)

2. 소수민족의 시민권 보장의 문제

구소련 시기부터 계속해서 현러시아연방 영토 내에 거주해 온 소수민족의 경우 러시아연방 시민권을 취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연방시민법상 1991년 11월 28일 현재 영구거주의 목적으로 러시아연방 영토 내에 거주하는 구소련시민권자들은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다. 이 법안에 따라 구소련 말기 이후 이주해 온 슬라브계 민족이 아무런 문제없이 시민권을 획득한 반면, 당시 혼란한 민족간 분쟁의 여파 속에서 러시아연방 영토 내로 이주해온 소수민족은 아직까지도 시민권을 획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헌법상의 기본권 및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1989∼1990년 사이에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거주 터키계 메스헤티인 9만여 명이 현러시아연방 영토 내로 이주해 왔고 이들 중 6만여 명이 현재 연방 내에 거주하고 있다.이들 중 다수가 크라스노다르 지역과 카바르디노-발카르스카야 공화국에 정착했는데, 이 지역 정부들이 이들의 러시아연방 시민권 인정을 거부하고 있다. 구소련 붕괴 시점에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되므로 메스헤티인들에 대한 시민권 인정 거부는 분명 불법이다. 이는 또한 메스헤티인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크라스노다르 지역에 거주하는 메스헤티인은 특별거주등록제의 적용을 받고 있다. 이들은 45일마다 180루블(약 8천 원)을 지불하고 거주등록을 만일 이를 어길 경우 4백 루블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9)메스헤티인은 지역 당국으로부터 필요한 서류를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주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구실이다. 일부 회사는 거주등록 없이는 임금조차 지불하지 않으며, 해고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경찰에 의한 불법적 구금 및 구타의 사례도 빈번하다. 지역 당국은 메스헤티인에게 터키로의 이민을 강요하고 있다. 1998년 30가구 정도가 터키로 이민하였다. 당국은 이들의 재산처분을 돕는 대신 이들의 모든 증명서를 몰수하였고, 대신 구소련 외국여행 여권(1년 기한)을 발급하였다. 돌아올 방도는 없는 셈이다. 한편, 터키 당국과의 아무런 협조가 없었기 때문에 이주자들은 불법체류자의 처지를 면할 길이 없다.10)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소수민족 역시 시민권을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메스헤티인 외에도 압하지아·아르메니아·쿠르드·오세티아 등 대체로 중앙아시아 지역이나 코카서스 지역 난민이다. 공교롭게도 코카서스와 그 주변, 즉 크로스노다르·스타브로플·아디게야·알라니아·카바르디노-발카리아·모스크바와 그 근교 등 이들이 일반적으로 거주지역으로 선택한 지방의 정부는 비교적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표명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따라서 이들 소수민족은 지속적인 민족차별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 소수민족의 사회·문화적 권리 보장

소수민족의 문화적 권리가 몇몇 연방법률에 의해 보호되고 있기는 하지만, 정책실행의 측면에서 볼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상 정책실행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수동적 자세와 경제적인 어려움, 자민족이기주의 등 구조적인 요인들 외에도 지방거주 소수민족이 그들의 권리와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부재하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이는 지방정부 기구에 소수민족이 과소 대표되어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체첸·타타르·추바시·북오세티아-알라니아·튜바 등 몇 개의 지방을 제외하고는 명목민족이 공화국인구의 과반수를 넘지 않는 반면, 정부기구는 명목민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테면 타타르스탄공화국의 경우 타타르인들이 전체인구의 51%인데 비해, 각료의 92%, 지역 행정수반의 76%가 타타르인이다. 사하 공화국은 명목민족인 야쿠트인이 인구의 37%를 점하고 있는 반면, 각료의 69%가 야쿠트인이다.11) 명목민족의 과대 대표현상은 한편으로는 민족간 정치적 권력을 둘러싼 중심/주변간 다툼이 중앙정부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지만, 정치권력상 과대대표된 만큼 정부정책에 소요되는 자원의 배분도 불균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소수민족의 교육·문화·사회적 보호에 필요한 자원 및 기회는 명목민족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바쉬코르타스탄의 경우, 명목민족은 총인구의 22%로서 러시아인(39%)이나 타타르인(28%)보다 적지만, 특히 교육분야에 있어 명목민족에 대한 특혜가 두드러진다. 이를테면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바쉬키르인은 칸디다트(박사 후보)나 독토르(박사) 학위의 취득에 상당한 특혜를 누리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기회를 박탈당한 타민족들은 다른 공화국에 가서 학위를 취득해야 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일부 대학에서 입학생 정원의 30%이상은 바쉬키르인으로 하자는 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중등교육과정 입학시 학부모가 교육언어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일방적으로 바쉬키르 언어로 교육하는 등의 정책을 선택하고 있다.12)

4. 토착 소수민족의 보호

헌법 69조와 관련법에 의해 러시아연방 내에 거주하는 토착소수민족들의 기본권 및 생존권은 물질적·재정적 지원을 위시한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되어 있다. 법률상 토착 소수민족의 자격은 인구 5만 명 이하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이 타민족과의 정치·경제적 경쟁상대가 될 수 없고, 민족 고유 영토가 존재하기 때문에 타민족과의 민족간 마찰에 휩싸이거나 굳이 민족차별의 대상이 되지도 않고 있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이들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토착 소수민족은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주로 러시아연방 국경지대, 특히 북부와 동부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중 몇 개 부족은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케메롭스코이 오블라스트에 거주하고 있는 쇼르츠인과 탈류트인은 오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생필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 공동체는 완전 고립상태에 처해 있기도 하다. 특히 이 지역 변방에 위치하고 있는 교도시설이 폐쇄된 이후 이들은 직장·전기·통신·의료서비스 등의 문명의 혜택의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근처 숲에서 버섯이나 호두, 딸기 등을 채집하여 근근히 연명하고 있다. 설탕이나 소금 등은 사치품 취급을 받고 있다. 현행 법률상 이들의 군복무는 공익 근무요원으로 대치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군복무를 자원하여 체첸으로 파견되는 젊은이들도 많다. 열악한 경제·사회 환경으로 인해 이들 소수민족의 사망률과 인구감소율은 러시아연방 평균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13)러시아의 경제적 어려움은 다른 이들보다 토착소수민족들에게 더 고통스럽다. 이를테면 1999년 5월 현재, 아무르 지역 거주 에벤크인 중에서 노동가능 인구 763명 중 단지 49%만이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낮은 취업율은 이 지역내 가용한 직업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낮은 교육수준으로 인해 이들의 취업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전문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노동인구는 14%에 불구하며 고등교육을 받은 이는 4.9%에 불과하다. 1999년 3월 현재, 1인당 평균수입은 216루블(약 만원) 정도이다.14)연방헌법과 소수민족 보호에 관한 연방법이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리를 명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과 프로그램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연방법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법의 실효성에 대해 섣불리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다른 법률이나 과거의 정책과 마찬가지로, 관련 조치의 미비와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인해 보호법의 실행은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4. 러시아연방 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의 한계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러시아연방 내 소수민족의 기본권 및 생존 보호의 수준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소수민족 관련 기본법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제반 법규가 제대로 구비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소수민족의 보호에 필수적인 사회적·도덕적 규범의 부재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정부의 소수민족 정책에 한계를 가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는, 민족주의적 정서이고, 둘째는 행정부와 의회의 갈등, 셋째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권력구도이다. 이 세 요인은 서로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

먼저 민족주의적 정서를 살펴보면, 신생 러시아의 출범과 함께 옐친 정부는 구소련 말기의 민족주의적 정서를 진정시키면서 서구적 정치·경제 질서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옐친의 의도는 러시아 내의 강한 민족주의적 정서 앞에서 무산되고, 오히려 정치적 혼란을 가속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여 1993년말 헌정위기로 귀착되고 말았다. 이후 일상화된 러시아민족을 위시한 제 민족의 민족주의 정서는 러시아 연방의 소수민족 정책에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1997년 실시된 ‘전러시아여론센터’의 한 여론조사는 러시아민족의 타민족에 대한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조사는 16세 이상의 러시아인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는데, 아제르인에 대해서는 35%, 체첸인에 대해서는 50%, 집시에 대해서는 44%가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15)중앙아시아인과 코카서스인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러시아인에게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특히 크라스노다르·로스토프 등 코카서스 부근 지역과 모스크바·페테르부르그 등을 포함한 러시아 서부에서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외양에서 뚜렷하게 러시아인과 구분될 뿐만 아니라 행동방식이나 전통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특히 심한 민족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은 테러나 조직범죄 그리고 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러시아인의 우월성을 부식시키는 경제적 경쟁자로서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테면 러시아 서부도시인 트베르의 한 일간지는 “코카서스인이 모든 분야에 걸쳐 지역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코카서스인의 자본이 우리(러시아인)를 노예화하고 있으며 동시에 러시아민족문화의 발현이 질식상태에 처해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16) 이러한 정서는 물론 많은 러시아인이 공유하고 있으며 때때로 소규모 집단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1999년 7월 3일 페테르부르그 동쪽에 위치한 레닌그라드 지역의 한 마을에서 8명의 러시아인이 모든 아제르인을 마을에서 몰아내라는 요구를 하며 행진을 하였다. 시위자들은 만일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자신들이 직접 아제르인을 처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17)이러한 차별적 민족주의 정서는 자주 행동으로 표출되며, 특히 극우민족주의 집단에 의한 민족차별 행위는 심각한 수준의 폭력을 동반한다. 이러한 행위는 명백히 불법이지만, 민족주의적 정서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소수민족의 권리침해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둘째, 연방행정부와 의회를 둘러싼 권력투쟁은 소수민족 보호를 위한 정책입안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를테면 양심과 종교에 관한 연방법은 이미 1993년에 상정된 바 있다. 두마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은 종교적 자유를 상당 정도 제한하는 독소조항이 삽입되어 있었고, 아직까지는 서구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던 옐친 대통령은 비토권을 행사하였다. 이는 당시 행정부와 의회간의 정치적 갈등의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고, 그 결과 1993년 말 의회의 강제해산과 신헌법의 채택으로 귀결된 바 있다. 그 후 4년만인 양심과 종교법이 대통령의 재가와 의회의 승인을 받았지만, 이미 살펴보았듯이 상당한 정도의 종교차별적 조항이 삽입되어 있는 등 타협적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러시아연방정부가 명시적인 민족차별적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소수민족관련 법률이나 정책들은 대체적으로 민족주의적인 차별의 요소가 첨가되거나, 최소한 토착 소수민족 차별법의 경우와 같이 국가의 정책수행에 대한 의무항목을 누락하는 등의 형태로 민족주의 정치세력과 타협함으로써 소수민족 정책을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셋째, 지방정부와의 권력관계의 측면을 들 수 있다. 러시아에서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는 단일의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구소련 말기의 여러 민족의 독립의 열기와 무관하지 않다. 연방으로부터 분리하려는 민족단위 공화국 및 지역들을 연방 내에 묶어두기 위해 옐친 대통령은 쌍무협정을 통해 지방정부의 요구사항을 일정 정도 충족시켜 주는 정책을 취했다. 이 정책을 통해 8개 민족단위 공화국과 몇몇 지역정부가 연방정부와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체결당사자에 따라 내용은 다양하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최초의 조약체결 공화국인 타타르스탄의 예를 들기로 한다.

러시아연방 정부와 타타르스탄공화국 정부의 조약은 1994년 2월에 체결되었다. 타타르스탄공화국은 구소련 말 이후 강한 민주주의 열기를 분출하면서 분리독립을 원해 왔다. 조약의 체결을 통해 타타르스탄은 러시아연방 체제의 공화국으로 남아서 연방에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기로 한 대신, 경제회복을 위한 저리의 연방차관 및 기타 재정적 지원을 받기로 하였다. 또한 이 조약에는 정치적 자치권을 보장하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다. 이를테면, 공화국 시민권에 대한 사항을 결정할 권리, 공익 근무요원 규정에 대한 권리, 독자적 중앙은행 설립의 권리 , 그리고 외국과의 조약을 체결할 권리 등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조약에 러시아연방의 헌법과 법률이 상위에 있다는 조항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러시아연방 체제를 독립국가연합 체제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분적이긴 하나 쌍무협정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시민권 및 외교권에 대한 정책이 공화국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점은 연합 체제로서의 성격이 러시아연방 체제에 배어있음을 의미한다.18)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이러한 관계는 소수민족 정책의 수행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양측의 소관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책의 담당자는 지방정부일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는 연방정부보다도 소수민족정책수행에 소극적이다. 각 민족단위공화국 및 지역에도 민족주의적인 정서가 팽배해 있으며, 정부당국자 스스로가 민족주의적 정서를 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연방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소수민족권리보호에 나서기보다는, 법규정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명목민족에 더 많은 특혜를 부여하거나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방정부가 소수민족을 위해 구체적 정책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예산을 할당하는 것을 바라기는 힘들다.

5. 과제와 전망

러시아연방 내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은 불안정한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법적 규범이 아직까지 불완전한 탓도 있지만, 이들에 대한 법적 규범, 더 나아가서는 도덕적 규범을 확립할 수 있는 정치·사회의 안정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도기적 연방체제로 인해 현재 러시아연방정부의 소수민족정책은 명목민족, 즉 민족공화국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타소수민족들의 권리는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소수민족정책의 정상화와 관련하여 단기적으로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다. 첫째는, 국제적인 압력의 행사이다. 헌법상 러시아연방은 인권과 관련한 국제규범과 원칙을 보장하고 있고(제17조), 98년 유럽위원회의 소수민족 보호 협정을 비준한 바 있다. 또한 러시아는 유럽위원회와 OSCE의 회원국이기 때문에 소수민족의 권리와 관련하여 국제적인 중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 정부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국가의 비판을 수용할 만한 자세를 갖추고 있지 않다. 작년 1월 발표된 ‘안보개념’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정치·경제·군사 및 기타의 영역에서 러시아의 지위를 하락시키려하는 몇몇 국가들을 경계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몇몇 국가란 미국과 서구국가를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소수민족의 권리와 관련된 서구국가들의 압력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체첸에서의 러시아정부군의 민족차별 행위와 관련하여 각종 국제기구 및 인권단체의 항의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지만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현 러시아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권력의 중앙집중화이다. 푸틴이 연방보안국(FSB·구KGB)을 주축으로 하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권력관계를 심각하게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현재 지방정부가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차별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강한 연방정부의 등장을 통해 좀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소수민족 정책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에 기반한 연방체제 대신 권위적인 중앙집권 체제가 등장하거나, 지방정부의 분리주의 성향을 가속화시켜 민족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 중 어떠한 가능성도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이상적인 소수민족 문제의 해결책은 연방과 지방정부의 권력에 소수민족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다문화 공동사회의 형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민족주의적 정서의 변화이다. 현재의 자민족 이기주의는 타민족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는 민족차별 및 소수민족의 권리 침해를 결과할 수밖에 없다. 다민족사회의 존재를 인정하고 타민족과의 공존의 방도를 모색하지 않는 한 소수민족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둘째는, 연방제도의 정착이다. 헌법 제5조에서 “연방의 모든 구성체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민족단위자치지역의 민족구성의 불균형의 문제나 쌍무협정의 체결과정에서 발생한 권리의 불평등의 문제 등을 안고 있다. 공화국 단위로부터 그 하부단위에 이르기까지 동등한 원칙에 기반한 지위와 권리, 의무의 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은 각 구성단위간, 그리고 구성체 내의 민족집단간의 갈등해결은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1) Jamestown Prism(1996. 4. 5.)

2) 디아그노스 (1997. 11.)

3) 이또기 (1998. 12. 5.)

4) www.fsumonitor.com/MHG_99/MHG_5.shtml

5) U.S. Department of State, 1999 Country Reports on Human Rights Practices, 2000. 2. 25.

6) Ibid.

7) Memorial Human Right Center, Compliance of the Russian Federation with the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rtion, 1998, 9.

8) Ibid.

9) U.S. Department of State, op. cit.

10) Memorial Human Right Center, op. cit.

11) www.fsumonitor.com/MHG_99/MHG_5.shtml

12) Ibid.

13) Ibid.

14) Ibid.

15) 이또기 (1998. 12. 5.)

16) www.fsumonitor.com/MHG_99/MHG_5.shtml

17) Ibid.

18) 엄밀하게 말하자면 러시아연방과 타타르스탄 간의 협정은 조약이라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대등한 독립국가의 관계 하에서 협정이 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러시아연방 의회가 이 조약비준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협정은 행정부간의 조약이라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협정은 행정부간 각서 정도의 의미를 지니며, 이 협정의 해석 및 효력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고 할 수 있다.

<민족연구 제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