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의 부시맨

피터 고드윈/ 최철호 역(교양사회 대표)

 

 

남부 아프리카의 최초 민족을 불쌍히 여겨라. 이름도 없는 이 민족을 동정하라. 여러분이 단 하나의 민족이라면, 다른 민족과 구별할 필요성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과거 잠베지(Zambezi)에서 희망봉, 대서양에서 인도양까지 독점 소유하였던 이 민족을 가엾게 여겨라. 1,200년 전에 이곳에 온 칼라하리(Kalahari)의 츠와나(Tswana) 이웃 민족은 그들을 바사르와(Basarwa), 즉 "무소유의 민족"이라 부르고 있다. 同系인 목장 주인들은 그들을 San(산), 즉 아웃사이더 혹은 유랑자라 부르고 있다.

그들 민족에게는 고대의 과거는 있지만 역사의 기록은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예외로 羚羊, 코끼리, 댄서, 사냥꾼을 그린 영광스러운 巖石畵가 남아 있는데, 그 중 몇 작품은 3,000년 세월의 태양, 비바람에도 불구하 고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장 최근의 그림은 항해중인 배와 말을 탄 기수를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은 없었다. 350년 전 아프리카 남부 해변을 유린한 유럽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그들을 단순히 부시맨이라 불렀다. 이주자들은 그들을 "길들일 수 없는 종족" 또한 가축에 위협이 된다해서 부시맨을 해충으로까지 취급하여 대량 학살하였다. 19세기 프리차드(J.C. Prichard)의 "인류 자연과학사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인류학 조사 보고서에서 프리차드는 부시맨의 운명을 "이처럼 궁핍하고 비참한 환경에서 더 이상 인간성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라고 요약한 바 있다. "아프리카의 꼬마 지구인"으로 광고하면서 소수의 부시맨 무리를 인기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별난 쇼"에 참가시켜 영국을 누비게 하고 있다.

일찍이 인류학자들은 부시맨을 "살아있는 화석", 즉 모든 인류와 연결시킬 수는 없지만, 인간 진화의 잃어버린 연결 고리로 보고 있다. 다른 인류학자는 그 독특한 부시맨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가 아닌, 동물의 소리로, 이를테면 "닭의 꼬꼬댁 소리나 칠면조의 꽥꽥 소리"로 여기고 있다. 부시맨은 사회의 외곽 벽지에서, 아프리카 남부의 신분체계, 카스트의 최하위로 신음하게 된다. 많은 부시맨은 가축을 소유하고 있는 반투(Bantu) 민족의 사실상 노예가 되었으며, 다른 부시맨은 백인 농장의 막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현재 약 85,000명의 부시맨이 존재하는데, 문명단절의 벽지에서 서성거리며 주로 칼라하리 사막, 보츠와나, 나미비아, 앙골라, 남아프리카, 짐바브웨 그리고 잠비아의 외곽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 부시맨은 지구상의 토착민족으로 집중적인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부시맨이 사냥꾼-채집자 존재, 그리고 인간이 가축을 기르고 농작하기 이전, 수 만 년 전까지 영위했던 인간의 생활양식과의 마지막 연결선 중의 하나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였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 자연 자체에 의존하던 그 시기. 오랫동안 부시맨들은 지금처럼 사냥꾼이나 채집자로서 완전히 고립해서 살아왔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인류학자들은 1950년대 시추공으로 알려진 우물이 소개되면서 칼라하리 부시맨의 마지막 변혁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사회에 비해 부시맨의 우월성은 물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즙이 풍부한 멜론과 감자 그리고 우기에 물로 가뜩 채워진 타조알을 밀봉해서 파묻었다가 건조기에 회수하는, 부시맨 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때문에 부시맨은 다른 민족들이 살 수 없는 지역에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재능은 소용이 없었다. 목축업자들이 시추공이 있는 땅을 차지하면서, 부시맨은 쫓겨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생존한 25여 그룹 중, 소위 순종 부시맨 부족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자연과 완벽하게 합일되어 살고 있는 부족이 나미비아 동북 나이에 나이에(Nyae Nyae)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들의 낭만적인 부족생활은 영화, "The Gods must be crazy(신은 분명 미치광이)"에 묘사된 바 있다. 그 지방의 부시맨은 자신을 주호안사이(Juhoansi), 즉 "진정한 사람들"이라 부르고 있으며, 1,600명 정도로 추산된다. 나이에 나이에는 보츠와나와 국경선에 위치한 삭막한 평지다.

과거에는 인종격리형의 "본 고장"으로 그 당시 나미비아는 사실상 남아프리카 지방이었다. 나미비아 독립 후 80년만인 1990년에 나이에 나이에는 부시맨 자치보호구역으로 선포되었다. 다행히 주호안사이(Juhoansi)는 그들 선조의 땅에서 혹은 그 일부에서 생활하고 있다. 덴위(Denui) 촌락은 나이에 나이에를 구성하고 있는 수십 개 중의 하나이다. 그 촌락은 관목이 우거진 칼라하리 저지대의 울퉁불퉁한 길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부시맨이 살고 있는 초가는 그들 선조들 것과는 거의 다르지 않으나 겨우 몸을 의지할 수 있는 움막으로서 사냥과 채집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의 주거형태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 촌락은 영구촌락으로 유리 소재로 만든 초등학교가 있고, 시추공에서는 음료수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 촌락에 가까운 덤불 속 빈터에 캠프를 설치하였다.

그 날 밤 나는 눈을 뜬 채로 가래 끓는 듯한 매사냥 소리, 결핵기침 같은 헛기침, 갓난아이들의 칭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소리들은 배회하는 재칼의 울부짖는 소리와 서로 다투며 별들로 가득 찬 하늘의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칼라하리는 겨울철이라 추위는 뼈를 에이는 듯 하였다. 새벽 4시 몇 분전에 닭이 울기 시작하였다. 텐트에서 빠져 나왔을 때, 부시맨이 "새벽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목성이 수평선에서 밝게 타고 있었다. 주전자의 물이 꽁꽁 얼어 있었다. 우리가 촌락에 들어섰을 때, 몇 가족들이 모닥불 주위에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이들 몇몇은 셔츠를 입지 않은 맨몸이었고, 어른들은 기껏해야 누더기 담요로 앙상한 어깨와 드러난 갈비뼈를 감싸고 있었다. 조식으로는 열매와 묽은 차가 고작이었다. 덴위 지도자인 남스(Namce)가 통나무에 앉아 갈대, 羚羊의 힘줄, 기린의 뼈 등을 사용하여 활과 화살을 만들고 있었다. 화살촉에는 스틴복(영양의 일종)의 뿔에서 나온 독을 발랐다.

부시맨의 독은 전설처럼 유명하다. 어떤 사냥꾼은 독사의 독과 선인장 즙의 혼합물을 사용하거나 전갈과 문짝거미의 분말을 사용한다고 전해진다. 여기 칼라하리 북부 지역에서도 부시맨들은 다이앰피디아와 폴리클래다의 딱정벌레와 나무의 진을 섞은 강렬한 독을 사용하고 있다. 그 독은 혈관에 들어가면 몸을 마비시키는데, 작은 영양이 독을 맞으면 24시간만에 죽고 만다. 큰놈은 며칠 걸리겠지만, 그러나 어떠한 해독제도 없다고 한다. 초기 정착자들을 공포로 떨게 한 것이 바로 부시맨의 독살이었다. 선교사 존 캠프벨은 1800년 초, 부시맨의 화살을 어깨에 맞은 동료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특히 머리 주위와 목구멍 부위가 엄청나게 부풀은 그의 모습이 우리를 경악시켰다. 그 독이 서서히 발가락까지 내려오다가 같은 방법으로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부기로 일그러진 얼굴이 보기에 끔찍하였다." 그 사람은 다음날 저녁 죽고 말았다. 신중하게 독을 다루다가 남스는 흡연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그는 금속 파이프에 나무 껍질과 바위너구리 배설물을 채워 놓고 매운 연기를 빨아들이다가 흡족해하며 내뿜은 후. 이마에 구슬로 장식한 늙은 여인에게 파이프를 넘겼다. 그 파이프가 나에게 왔을 때, 그냥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나의 통역이 사냥감 흔적을 읽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당신 민족이 독서하는 방법과 똑같이 수풀은 우리의 책이오." 독화살로 무장한 한 무리의 사내들이 사냥 길을 떠났다. 그 사내들은 가끔씩 땅을 흘낏 흘낏 보면서 빠르게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사냥감의 흔적을 살폈다. 나의 부시맨 통역자는 그들이 흔적을 읽는 방법을 독서에 비유하며 설명하였다. "똑같은 방법으로 당신 민족은 책을 읽죠. 수풀이 우리의 책이랍니다." 사내들은 동물들이 남겨 놓은 흔적을 보고 동물의 나이와 성을 알아낸다. 한 젊은 사내가 무릎을 꿇고 한 하터비스트(羚羊의 일종) 배설물을 살펴보며 배설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소화가 덜 된 것이고 더 나이가 들었다고 판별해 낸다.

부시맨은 짓밟힌 개미집을 다시 짓는 흰 거미, 풀잎이 젖혀졌다가 제자리로 온 상태, 거미줄을 다시 만드는 거미를 보고, 그 흔적이 얼마나 경과했는지를 판단한다. 부시맨은 사냥감이 화살을 맞는 경우 바로 쫓아가지 않는다. 사냥감이 서 있었던 곳에 가서 그 사냥감의 독특한 냄새나 발자국을 기억해 둔다. 그런 후에야 사냥감이 쓰러질 때까지 참을성 있게 추적한다. 이러한 사냥 재능 때문에 군대나 헌터, 농부들이 게릴라나 사냥감, 밀렵꾼을 추적하기 위해서 부시맨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오늘 사내들은 빈손으로 돌아온다. 나이에 나이에서의 사냥감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냥은 부시맨이 먹는 것의 작은 부분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식량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있는데, 어느 나이에 나이에 촌락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사냥이 매주 식량의 20% 이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의 가뭄 구호기금에서 거의 40%, 35%는 연금, 수공품 판매와 임금에서 나오는 현금으로 식량을 구매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채소나 마초 수집으로 충당하고 있다.

며칠 후 태양이 얼음장같은 아침을 녹이고 있을 때, 나는 촌락 부녀자로 구성된 마초 수집 원정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부녀자들은 풍부한 단백질을 제공하는 개암열매 크기의 만게티 열매를 수집할 예정이었다. 부녀자들은 영양 가죽으로 몸을 감싸고, 갓난아기들은 등에 끈으로 걸멘 채 아주 빠른 걸음걸이로 덤불을 헤치며 출발하였다. 자동차 타이어로 만든 조잡한 샌들을 신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거의 맨발이었다. 얼굴에는 문신, 눈에서 푸른 광채를 내면서 아침 햇살을 받은 황금빛 넘실거리는 풀의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얼마 후 여인들은 나뭇잎 더미와 땅을 막대기로 뒤적이고 있었다. 한 여인이 옆구리에 멘 부대를 가득 채우면서 수집하고 있는 여러 가지의 식물과 동물의 사용법에 대해, 어떤 나무 뿌리는 토혈을 치료하는데 좋고, 다른 것은 열이나 감기에 좋다고 설명해 줬다. "그리고 이 뿌리는 행운의 식물이라고 부르는데, 이 재를 얼굴에 바르면 모든 사내가 사랑한대요," 라며 잡초를 캐내면서 전해 주었다. 우리는 마침내 만가네티 덤불 숲에 도착하였다. 최근에 다녀간 코끼리떼, 토네이도로 인하여 나무들이 뿌리째 뽑힌 채 갈갈 이 찢어져 있었다. 8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갈 쯤 에는 부녀자들의 부대가 수집 품으로 불룩 나와 있었다. 아기들을 등에 고쳐 멘 후 석양을 등지고 저 멀리서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는 촌락으로 향하였다. 집에 도착한 여인들은 잡아온 딱정벌레의 날개를 찢어낸 후 모닥불 더미에 몇 초 간 구운 뒤 한 웅큼 나에게 선물하였다. 나는 한 개를 입에 넣고 불안해하며 오독오독 씹었다. 그 벌레 액이 혀를 적시자 서둘러 삼켜 버렸다.

밤에 촌락에서는 가끔 모닥불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곤 하는데, 이 춤은 부시맨의 주요한 靈性의 하나인 광란의 춤으로 발전하곤 하였다. 수년간 선교사들이 부시맨을 크리스찬으로 개종시키려 했으나 덴위 촌락에선 허사였다. "우린 전통주의자란 말이오," 그 촌락의 지도자가 설명하였다. "우리는 크리스찬이 아니오. 그러나 크리스찬들이 말을 건네는 사람, 그 누구에게도 우리도 말을 걸 수 있단 말이오. 하느님은 아무래도 좋소. 단지 그에게 말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부녀자와 아이들이 모닥불 주위에 앉아 손뼉을 치고 있을 때, 사내들은 발로 땅을 쾅쾅 밟아 먼지를 일으키고, 가죽으로 걸친 허리를 흔들어 대면서 불꽃 주위를 돌고 있었다. 점차 손뼉과 뜻 모를 합창의 리듬이 빨라졌다. 기린 댄스라고 부르는 이 의식은 그 지방 샤먼인 노인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그 노인은 구슬이 달린 머리띠에 타조 깃을 꽂고 있었으며, 바지위로 황토색 주머니가 펄럭거리고 있었다. 그는 모닥불을 빙빙 돌다가 결국에는 광란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러한 무의식 도취 상태에서 병자를 치료할 수 있고, 죽은 자 혹은 부재중인 친척과 대화할 수 있다고 부시맨은 믿고 있는 것이다. 병든 계집아이의 어머니가 그 샤먼에게 자기 딸이 왜 병 들었는지를 알아달라고 부탁하자, 그 샤먼은 그 아이 어머니의 생각을 알아내려는 듯이 그 여자의 어깨를 잡고, 어깨에 이마를 눌러댔다. 다른 주민들은 갈대 뿌리로 만든 향료를 샤먼의 몸에 비벼 바른 후, 한 웅큼 모닥불에 던지자 불꽃이 일어나면서 무수한 작은 별들이 튀었다.

<민족연구> 제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