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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민족문제

박지원 (본원 연구원)

말레이시아의 민족문제 1. 서론 말레이시아는 부미푸트라라고도 하는 말레이계가 중국계, 인도계 등과 어우러져 살고 있는 나라이다. 1999년 기준으로 2271만명의 인구 중 말레이계는 62%, 중국계는 27%, 인도계는 8%이다. 말레이계의 인구가 전체의 62%정도밖에 안되지만,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의 정치적 우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35%정도의 중국계와 인도계가 이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특기할 만하다. 사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독립한 이후 상당기간 동안 말레이계의 정치적 우위를 지키면서 각 민족에게 비교적 잘 개방된 의회를 구성하여 협의민주주의의 전형으로까지 인식되었었지만, 1969년의 대규모 민족폭동 이후 민족문제의 관리를 위해 권위주의로 이행했다. 이후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에 대한 경제적 특혜를 제도화하여 말레이계를 경제적 약자에서 경제의 한 주역으로 키우고자 하였다. 이러한 말레이시아에서 국내 민족의 민족성(ethnicity)을 다른 개도국과 비교했을 때 낮다고 볼 수 없다. 동남아시아 그 중에서도 특히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인들은 중국계에 대한 경제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높은 민족성(ethnicity)를 가지고 있고, 이는 동남아시아 정치의 중심 문제 중 하나이다. 한편, 말레이시아와 이웃나라인 싱가포르도 말레이시아와 같이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국가이다.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이 두 국가 모두 다수민족만을 위한 국가를 건설할 수 없는 여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라는 특성과 말레이계 국가들에 포위된 형국이어서 중국계를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성할 수 없다. 말레이시아의 경우는 말레이계가 전체 인구의 과반수는 넘게 차지하지만 말레이계의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27%정도의 중국계가 가진 압도적인 경제력을 감안할 때 말레이계의 정치적 우위가 제도적으로 보장된다고는 하지만, 전 사회에 걸친 말레이화를 진행하기에는 한계를 보인다. 그래서 말레이시아는 민족의 동화보다는 말레이계를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말레이인의 약한 사회경제적 지위와 민족성을 강화하기 위해 말레이어를 국어로 삼고 말레이계의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이자 국교인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말레이시아의 말레이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마하티르가 집권한 1982년부터 더욱 본격화된 것으로 말레이 민족의 민족성을 강화하여 정치·경제·사회에서 말레이계가 더욱 주도적으로 활동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 후반 기존의 비경제적인 말레이계 우대정책이 말레이시아 경제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자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와 같이 본격적인 외국인 투자유치정책을 벌여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말레이계 우대정책이 가져온 경제적 합리성의 결여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었고, 탈냉전으로 보다 본격화되기 시작된 국제경제전쟁에 대한 대비책이었던 것이다.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국내환경을 조성해야 했고, 말레이계만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이슬람교에 집중된 가치체계를 보다 유연한 합리적 사고체계로 전환해야 했다. 이것이 말레이시아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게된 동기였다. 기존의 비효율적인 경제체제로서는 앞으로의 경제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만족하지 못한 민족들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는 사상누각(砂上樓閣)과도 같다. 그래서, 경제성장을 위해 기존의 정치·경제적인 구도를 대폭적으로 수정하게 된 것이다. 결국, 민족간 안정과 통합이 말레이시아 정치의 최대 핵심과제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말레이계 우대정책과 경제성장 정책 사이를 오가고 있다. 2. 90년대 이전의 말레이시아 정치와 민족문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말레이시아에서 민족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것들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말레이시아 정부나 다수 민족인 말레이계가 가장 민족적인 색채를 띄는 것이 말레이시아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민족간의 갈등을 조장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민족에 대한 노골적인 지원을 하면서도 다른 민족들이 이에 대해 적극적인 반발을 하지 않는 특이한 경우가 말레이시아인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계에 대한 우월한 사회 지위 부여는 당연시된다. 이들이 원주민이고 정치적 실세이며 다수집단이기 때문에 부여된 것이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바로 1969년 5월 13일의 대규모 민족폭동이 그 뒤에 숨어있다. 영국 식민지 시기에 시작된 민족간 분업체계로 인해서 독립 이후 심화되어온 중국계의 경제력 독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영향력 강화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말레이계들의 대규모 폭동은 2년간의 헌정질서 정지를 가져올 정도로 말레이시아 사회 전반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쳤다. 말레이계가 다수민족이라고는 하나 겨우 과반수를 넘기는 정도이고 경제력의 90%를 외국인과 중국계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말레이계가 처한 입지가 얼마나 절박한 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제력의 불균등한 편재는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민족간 분업체계의 영향이다. 영국인들은 말레이계가 근대적 이윤추구 동기가 약하기 때문에 고무, 야자유 같은 플렌테이션 농업이나 주석광산 등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중국인과 인도인을 대거 유입시켰다. 더 나아가 중국인들의 적극적인 이윤추구는 영국인들로 하여금 중국인에게 경제를 맡기게 하였다. 한편,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술탄들에게 정치적 지배권을 인정해주고 간접통치를 하면서 말레이인들에게 정치를 맡기게 된다. 이러한 분업구조는 1957년 독립한 이후에도 지속되어진다. 말레이시아 정치의 핵심정당이자 다수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 UMNO(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는 1946년 자파르(Dato Onn bin Jaafar)의 주도로 창설되었다. 1948년 말레이 반도, 페낭, 멜라타의 모든 주가 통합된 연방이 결성되었다. 말레이 공산당의 폭동 후 영국은 비상조치를 통해 공산당의 활동을 금지시키고 대신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정치적 협력관계를 통해 공산당 세력을 정치적으로 차단시키고자 하였다. 라만(Tunku Abdul Rahman)의 주도로 UMNO는 MCA(Malayan Chinese Association), MIC(Malayan Indian Congress) 등과 결합하여 1952년 동맹당(Alliances)을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1955년 총선에서 동맹당은 반공산주의, 반식민주의를 강력하게 표방하여 52석 중 51석을 얻는 성과를 내었다. 결국 영국은 1957년 8월 31일 말레이시아로부터 철수를 결정하고 말레이시아는 독립을 획득했다. UMNO는 급진적인 말레이 민족주의와 농민계급에 기반을 둔 이슬람 정당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한 영국 식민세력과 말레이 전통 지배계급간의 일종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성격을 내재하고 있다. 중국 자본가들은 MCA를 통해 중국계 노동자계급의 성장을 제한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MIC 역시 급진적인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노동계급에 대한 지배권을 견제하려는 인도계 중산층의 의도가 적절하게 결합되었던 조직이었다. 이러한 동맹당의 자유방임적인 경제정책은 식민지 시절의 경제운용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1960년까지 말레이시아의 고실업 상태와 낮은 성장, 민족-계급간 불평등의 심화는 발화점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1969년 5월 13일에 대규모 민족폭동이 일어났다. 5월 10일의 총선에서 야당의 대대적인 약진, 특히 중국계 정당의 약진은 말레이시아 전 국민의 절반 이상과 극빈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말레이계에게 경제적 소외에 이어 정치적 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이른바 5.13사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폭동의 결과 말레이시아의 헌정은 2년간 정지되었고, 기존의 방임적인 경제정책에서 빈곤퇴치와 경제적 불평등, 특히 민족간 경제적 격차의 해소를 위한 정책으로 돌아서게 되고 이것은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 NEP)으로 구체화된다. 또한, 말레이시아의 정치도 이전의 각 민족에 개방된 협의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적인 성격으로 변화하게 된다. 동맹당도 보다 문호를 개방하여 많은 정당이 참여하는 국민전선(National Front: NF or Barisan National: BN)으로 바뀌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주도정당인 UMNO의 패권화가 더 강화되었다. 즉, 1969년 민족 폭동의 경험이 말레이시아 정치체제에 미친 중요한 영향 중 하나는 중앙정부가 사회통합과 정치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갈등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종갈등을 비롯한 사회갈등이 제어되지 못할 경우 불행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을 겪었기 때문에 권위주의 체제의 강화가 정당화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주 역설적으로 다민족 복합사회를 구성하는 거대한 다른 민족집단의 존재 때문에 특정민족, 즉 말레이계가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철저한 권위주의 정부가 등장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말레이계는 전 인구의 과반수 정도이고 제2민족인 중국계가 압도적인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비말레이계에 속하는 중간계급이 정부의 말레이족 보호 정책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정부 구성에 참여하고 있는 비말레이계 정당을 지속적으로 지지해줌으로써 현 정부의 안정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현재의 사회적이고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현 정부의 질서가 최고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정치사회적 혼란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레이계 중간계급 역시 사회질서의 안정을 위해 1969년 이후 노골화되기 시작한 정부의 권위주의적 조치를 기꺼이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말레이계 중간계급은 현 정권의 중요한 기반인 동시에 견제의 잠재성도 가지고 있다. 한편, 여전히 중국계의 경제적 실력은 정부로 하여금 중국계 기업의 이해관계를 전적으로 무시하지 못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중국계 기업의 한계는 정치권과의 친분이나 연고에 깊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견제세력으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 말레이시아의 권위주의체제는 산업화 전략의 전환보다는 권력자와 도전세력간의 정치적 투쟁, 그리고 다민족복합사회의 사회갈등의 맥락에서 더 잘 설명된다. 집권여당의 결속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지배세력 내부의 정치적 갈등도 조절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권위주의체제의 강화는 UMNO 집권에 대한 도전세력은 물론이고 집권세력 내부의 권력경쟁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필수적인 대책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권위주의체제의 강화는 바로 이러한 정치적 역학관계로 인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민족 복합사회에서 어느 한 민족 중심으로 일방적인 권위주의적 지배를 관철시키고자 할 경우 부딪치게 될 타민족의 정치적·사회적 도전은 수월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 경쟁의 역동성은 말레이시아 권위주의 체제의 극단적 심화를 저지하는 견제장치로 작동하기도 한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의 경우 권위주의 체제의 심화 현상은 경제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민족적 갈등의 관리 차원에서 설명되어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①신경제정책 신경제정책의 기본목표는 국민경제의 재편성을 통한 경제 성장이었고 그 주도권을 정부가 장악하는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1969년과 같은 파국을 막기 위한 국민통합 정책이었다. 즉, 신경제정책은 말레이인들의 경제적 지위와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특혜적 조치의 추진을 기본으로 하는 것으로 명백한 정치적 목표를 담고 있는 경제정책인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제개혁은 처음부터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적 합리성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함께 다민족사회의 정치적 안정까지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어떤 민족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균등하게 발전을 담보하고자 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말레이계에 편향된 정책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계와 외국인의 자산을 상당부분 가져와야 하는 제로섬게임이 될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국계는 국가 자산의 22.5%를 차지하던 중국계의 자산은 50%대로 올라섰고, 1.9%대였던 말레이계도 30%에 근접하게 되었다. 결국, 60%이상이었던 외국인들의 자산이 줄어들게 된 것이어서 국내에서 중국계와 말레이계의 심각한 충돌은 일어나지 않게 되어 국내적으로 제로섬적인 갈등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신경제정책은 전통적 산업부분에 편중되었던 말레이계를 도시화하고 경제적으로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신경제정책은 교육기회의 부족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었던 말레이계를 위해 국공립대에서 정원의 70%이상을 말레이계 학생만을 받도록 쿼터를 설정하고, 국가기관과 사기업 모두에서 말레이인 고용의무, 말레이시아내의 모든 사업장에 대한 말레이인의 지분소유의무, 토착 말레이인을 뜻하는 부미푸트라 기업에 대한 각종 사업권의 우선 배정 등을 통해서 단기간 내에 말레이계를 말레이시아 경제의 한 주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강력한 도시 이주정책과 정치·경제적 우대정책은 말레이계가 경제적 약자의 처지에서 말레이시아 경제의 한 축으로 올라서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물론, 중국계에 비한다면 아직도 열세이기는 하지만 말레이계의 경제력 성장은 경제에 있어서의 어느 정도 민족간 균형을 이루는 데 성공하는 등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신경제정책의 말레이인 우대정책은 보조의존적인 국민의식을 가진 말레이인 형성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했고, 이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큰 딜레마가 되었다. 또한,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배려는 경제정책 자체의 합리성을 제약하였다. 즉, 신경제정책은 사회·경제적 문제의 민족화를 가속화시킨 것이다. 싱가포르가 국민들에게 어떤 특혜에 대한 기대나 권리의식을 가지지 않게 만들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과는 달리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인 우대정책은 특권의식을 가지고 국가의 보호를 요구하는 '말레이인 중산층'만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한편으로 말레이인들 중에 자신들에게 내려진 특혜만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말레이인이 돈을 받고 명목상 대표가 되어 정부의 특혜를 이끌어 내주고 실제 소유와 경영은 중국계가 하는 소위 알리바바 경영(Ali-Babaism)이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합리적인 경제적 고려가 부족한 말레이인 우대조치는 거대한 부실과 의혹을 곳곳에 만들어냈다. 이는 말레이시아 국민경제에 심각한 경제적 부담이 될 가능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도 압도적인 중국계 자본을 무력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의 무리한 추진은 왜곡된 경제구조를 야기하게 된 것이다. 중국계 자본은 신경제정책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의 사업네트워크를 더욱 강화하고, 알리바바 경영을 하는 등의 대응을 했지만, 주로 부동산과 금융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등 생산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 말레이시아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경제정책은 알리바바 경영과 같은 왜곡된 경제 행태를 양산하여 경제구조가 강화되지 못하고 경제적 합리성이 떨어지면서 애초에 의도했던 부의 재분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싱가포르식의 경제 삼각구도로의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다국적 기업의 유치로 인해서 신경제정책이 가진 정치성이 합리적인 경제운용정책으로 전환되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말레이계 자본과 중국계 자본의 대결구도에서 외국계 자본의 추가는 국가경제의 균형상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현재 말레이시아 경제성장의 주도세력은 정부가 육성하고자 했던 말레이계 기업도 아니고, 정부의 비중축소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장한 중국계 기업도 아닌 다국적 기업이다. 신경제정책으로 인해 야기된 생산성과 경제적 합리성의 저하는 1980년대 중반의 세계적 불황의 여파로 더 이상 방관될 수 없는 문제로 부각되었고, 1980년대 후반 신경제정책이 수정되어 외국인 투자에 의한 산업화가 도입된 것이다. 다국적 기업의 유치는 말레이시아 경제에 활기를 주고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말레이인 우대조치를 대폭 완화했다. 국내의 국가자본을 중심으로 한 말레이계 자본과 중국계 자본 모두가 제조업에 대해서는 등한시하였기 때문에 외국계 자본이 제조업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여서 말레이시아 경제는 외국계 자본의 유출입에 의해 크게 요동치는 종속상태를 보이게 됐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 경우와 같이 경제 성장을 지속시키려면 국내적 안정을 담보해야 함을 의미했다. 즉, 내적 안정을 위해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신경제정책은 경제규모의 성장이라는 절대적 기준에서 말레이시아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빈곤문제의 해결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말레이 공동체의 경제적 지위 향상이나 소득구조의 획기적 개선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특히 중국계와 인도계와의 상대적 기준에서의 말레이계들의 경제적 열등 지위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는 못했고, 말레이계와 중국계 등 모든 민족집단 내부의 빈부격차는 도리어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신경제정책은 국가통합을 위해 빈곤퇴치와 민족간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를 목표로 했다. 만일 신경제정책이 중국계의 완전한 경제적 박탈을 원했다면, 말레이시아에는 결국 파국이었을 것이다. 신경제정책은 공존을 위한 차별장치였지 파국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1969년 5.13사태의 악몽이 공존을 위해서 타민족들이 말레이계에게 경제적 양보를 해야한다는데 동의를 이끌어 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신경제정책은 국가통합을 위해 이루어진 차별정책이라는 아이러니적인 정책이었다. 3. 90년대 이후 말레이시아의 정치와 민족문제의 변화 독립 이후 1969년의 5.13사태 이전까지 말레이시아 정부는 민족간 분업체계를 따라 중국계 민간기업에 너그러운 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5.13사태 이후 1970년대부터는 민족간 경제적 불균등을 시정하기 위한 신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구체적 방법으로 국가자본의 확장이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더욱 발전하여 말레이계 중심의 중공업화정책이 시작되었지만, 1980년대 중반의 전세계적 불황과 말레이계의 중공업화 추진능력의 부족으로 인해서 이제까지의 말레이계 육성을 위한 국가자본 확장정책이 한계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마하티르 정부는 싱가포르식의 외자유치를 위한 개방정책을 시행한다. 20년간 지속된 신경제정책은 경제적으로 빈약하기 이를데 없는 말레이계를 경제적 주체로 만들려 하다보니 말레이시아의 경제구조의 왜곡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당사자인 말레이계는 물론이거니와 중국계 또한 기형화된 경제구조 속에서 안주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는 낮은 생산성과 기술력, 그리고 생산적인 투자에 대한 인식 부족과 같은 심각한 양상을 띄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정부의 특혜를 받을 수는 있지만 경영과 자본동원 능력이 부족한 말레이계와 정부의 특혜를 받을 수는 없지만 경영과 자본동원 능력이 뛰어난 중국계의 결합이 일반적이었다. 특혜를 받기 위해 외견상 말레이계를 대표로 내세웠지만, 실제 소유와 사업은 중국계가 하는 소위 알리바바 경영이 횡횡한 것이다. 그래서 신경제정책이 의도했던 20년내 말레이계의 국가자산 소유비율 목표인 30%가 달성되었다고는 하나, 이중 1/3이상이 알리바바 경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말레이시아 경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외국인 직접투자에 의한 산업화 전략은 말레이계를 대표하는 국가자본과 중국계 자본의 양자구도에서 외국자본의 추가로 삼각구도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자본의 삼각축의 형성은 기존의 왜곡된 경제구조에 경제적 합리성을 진작시키게 되었다. 비효율적인 국가자본과 중국계자본의 구도에서 효율적인 다국적 기업의 진입은 말레이시아의 경제구조를 단기간에 국제 무역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게 바꾸어 놓게 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말레이시아의 고도성장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강력한 영향력은 그만큼 말레이시아 경제를 외국자본의 영향에 노출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유치된 다국적 기업의 투자는 순식간에 말레이시아 경제성장의 핵심이 되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정부의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켜서이다. 결국, 말레이시아도 싱가포르와 같이 국내 안정과 경제성장을 위해 다국적 기업이 계속 남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국적 기업을 위한 세제와 각종 지원, 그리고 노동통제를 통한 좋은 생산조건의 제공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하여 국내 안정의 유지도 중요한 것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2002년 현재 똑같이 다국적 기업의 생산기지로서 산업화를 수행하고 있지만, 그 시작 의도에서 중요한 차이를 하나 가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독립된 직후부터 좁은 국내시장과 도시국가적 취약성 때문에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여 수출지향적인 산업화를 진행시킬 수밖에 없었다. 싱가포르의 생존을 위해 조화와 안정을 추구한 李光耀가 경제의 주도권을 중국계에게 주지 않고 외국자본을 직접유치한 것은 중국계의 경제력 독점이 민족간 안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아서이다. 그렇다고 싱가포르가 경제적 주도권을 다국적 기업에 내준 것은 아니었다. 국가자본을 확충하고 중국계 자본을 존속시켜 자본의 삼각축을 형성하여 어떤 자본에 의한 경제력 독점을 견제하여 경제력 독점으로 인한 사회관계의 불안정 요인이 발생할 여지를 제어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중국계에게 경제적 주도권을 인정했다가 민족간 경제적 불균등의 심화로 심각한 사회불안정을 경험해야 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민족간 경제적 불균등을 시정하기 위해서 신경제정책을 시행하여 말레이계의 경제적 성장을 촉진하려 하였다. 대다수의 말레이계가 전근대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레이시아는 국가가 자본을 먼저 구축하고 이를 민영화하는 형태로 말레이계에게 넘겨주는 말레이계 진흥정책인 부미푸트라정책을 수행하였지만, 말레이계의 능력이나 정부의 역량 모두 의도한 결과를 이루는데 역부족이었다. 과도한 말레이계에 대한 특혜는 비효율적인 낮은 생산성만을 안겨주었다. 또한, 연고주의와 알리바바 경영이라는 왜곡된 부분을 초래하여 정부의 정책의도에 기생한 말레이계와 중국계 사업가들을 무수히 양산해냈고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말레이시아가 1970년대와 1980년대 성장한 것은 국가의 대규모적인 자본투입 때문이었다. 결국, 이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고, 말레이시아정부는 대규모 재정적자를 걱정해야 했다. 말레이시아가 지금과 같은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가장 중요했다. 1980년대까지 말레이시아가 이룬 경제성장도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신경제정책이 애초에 의도했던 민족간 경제적 불균등의 해소도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이것이 마하티르로 하여금 싱가포르식의 선 고도성장 후 민족간 분배라는 방식을 도입하게 만든 동기 중의 하나이다. 외국자본을 유치하여 진행된 산업화는 나름대로 말레이시아 경제구조를 개선시켜서, 1990년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위기였던 1997년 말에 닥친 외환위기에서 큰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큰 소요없이 견딜 수 있었다. 즉, 외환위기는 경제전반의 위기로 이어졌지만, 민족간이나 사회적 긴장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1980년대 이후 지속된 경제개혁과 민족갈등 해소과정이 각 민족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해관계가 보호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것은 경제위기로 인한 급격한 실업증대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9년 중반 실업율은 4%대였고 인플레이션도 5%이하로 비교적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말레이시아의 민족정책과 경제정책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①신경제정책의 종료와 아시아적 가치 아시아적 가치를 국가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나라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뿐이다. 이들 국가는 특정 정당과 지도자가 장기집권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외국인직접 투자형식의 다국적기업 진출에 의한 산업화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형태이다. 다민족 국가라는 태생적 문제점에 직면하여서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더 강한 내적 통합의 기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가 직면한 과제이다. 다민족 구성의 원심성을 구심성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일차적으로 경제 문제의 해결이 필수적인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이질적이고 분열적인 민족구성을 갖춘 국가에서는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말레이시아 문제의 뿌리가 다민족 복합사회의 특성에서 나왔고, 민족적 차이가 정치권이나 정치세력의 형성에 그대로 반영되어 민족 집단에 기반을 둔 정치적 동원과 정치의식이 활발하다는 점과, 민족문제가 늘 사회적 긴장과 갈등의 뇌관으로 잠복해 있다는 것이 말레이시아의 특징이다. 이 점에서 마하티르의 아시아적 가치론이 다분히 서구의 독주를 겨냥한 대외적인 주장을 위한 논리라고는 하지만, 다민족 사회인 말레이시아 내부에 대해서는 말레이시아 민족주의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마하티르는 자신의 저서 『도전』에서 "원인이 물론 타민족 때문일 수는 있다. 그러나 말레이족은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내야 한다. 신은 민족 스스로가 변화하려 노력하지 않는 한, 한 민족의 운명을 결코 변화시켜 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나타나듯이 말레이시아 내부 문제를 인식하는 시각이 인종적 차원으로부터 다민족 복합 사회의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단계로 진전되는 과정에서 마하티르의 말레이 민족주의의 쇄신은 아시아적 가치의 복원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담았다.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주장에는 정치 안정을 이룬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을 묶어두려는 경제적 의도도 숨겨져 있다. 사실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는 나라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뿐인데, 이 두 나라 모두 다국적 기업에 의한 산업화를 추진한 국가들이고, 이들이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한 계기도 기존 정치질서를 존속시킴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고 좋은 투자환경을 유지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즉, 정치체제적 측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에 의한 산업화를 존속시키고자 하는 경제적 측면도 강하다. 이는 물론 역도 성립되는데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여 사회경제적 안정을 이룸으로써 정치적 안정도 보장받으려는 의도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하티르는 서방 자본주의 진영에 대한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우대 정책을 통해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외국 자본가들의 반응은 역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서방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마하티르 정부에 대한 비판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경제구조가 경직화될 경우 다국적기업들은 더 나은 조건의 생산기지를 찾아 떠날 위험이 있다. 그래서 국내의 중국계 자본들도 나름대로 인내의 한계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마하티르는 새로운 국민적 동의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싱가포르가 일찍부터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여 경제 부문의 합리성을 제고하였던 것에 비하여 말레이시아는 초창기의 방임정책이나 1970년 이후의 신경제정책이 표방한 말레이계 우대정책 등에서와 같이 개방적이지 못한 경제정책을 시행해 왔다. 결국, 말레이시아도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계 자본을 끌어들이면서 싱가포르와 같이 외국자본을 붙잡기 위해 기존 정치구도의 유지를 통한 국내 안정을 담보해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가 싱가포르와 같은 아시아적 가치의 추구이다. 물론, 싱가포르의 아시아적 가치가 중국적 가치에 기반한 것과는 달리 말레이시아의 아시아적 가치는 말레이적이며 이슬람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들이 기초한 기본 개념은 다를지 몰라도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정치안정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라는 기본적인 목적에서 양쪽의 주장은 일치한다. 한편, 기존의 이슬람화 정책에 대한 중화도 말레이시아가 아시아적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 이유의 하나이다. 말레이계 우대정책과 이슬람화 정책은 말레이시아의 말레이계의 민족성을 강화하고 경제적 입지를 강화하여 정치·사회적 주도권을 고수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합리성을 크게 저해하는 요인이었다. 기존의 말레이계 우대정책과 이슬람화 정책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외국인 개방정책에 있어서 장애요인으로 나타났다. 이에 마하티르와 말레이시아 정부는 기존의 정치적 구도를 해치지 않으면서 새롭게 요구되는 사회·경제적 가치들을 동시에 수용해야하는 딜레마를 아시아적 가치라는 기제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즉, 기존의 말레이계에 대한 우대와 이슬람화에 대한 기본적인 동의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새롭게 요구되는 경제적 합리성에 대한 접목이 이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의 육성정책으로 새롭게 등장한 말레이 중산층들은 말레이계에 대한 특혜가 없어질 경우 정부에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보았을 때, 신경제정책이 의도했던 빈곤퇴치와 민족간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라는 요소 중에 제대로 된 것은 극빈자의 수만을 줄여놓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빈곤이 어느 정도 줄어들기는 했지만, 가장 핵심이었던 민족간 경제력의 차이는 의도했던 것에 비해 적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문제인 것은 민족간 경제력 차이보다도 민족 내부의 빈부차이의 심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표1 민족별 빈곤율의 변화(단위: %) 출처: Samsudin Hitam, Development Planning in Malaysia Labour Marketstand Human Resource Planning in Asia: Perspective and Evidence, Geneva: ILO, 1993, p.185 1990년에 공식적으로 말레이계에 대한 우대를 기본으로 하는 신경제정책이 종료되었지만, 새롭게 시작된 국가개발계획(NDP)에서도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계에 대한 우대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너무도 많은 말레이계들이 말레이인들에 대한 우대를 당연시하고 권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의 철회는 곧 정치적 기반의 상실이 될 수 있다. 이는 새롭게 경제적 합리성에 기반한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는 마하티르 정권에는 정치·경제적인 부담이 되었고, 이에 대한 새로운 합리화를 위해 아시아적 가치가 주장되는 것이다. 사실 새롭게 형성되어진 의존 지향적인 말레이계 중산층과 엘리트들은 일종의 마마보이와도 같다. 이들을 울리지 않고 새로운 방향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목표의 제시와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것이 기존의 것과 너무 달라도 안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아시아적 가치론과 선진국 입성을 목표로 하는 '비전2020'이 나타난 것이다. 표2 민족별 기업자본소유의 변화(단위: %) 출처: Samsudin Hitam, Development Planning in Malaysia Labour Marketstand Human Resource Planning in Asia: Perspective and Evidence, Geneva: ILO, 1993, p.185 어쨌든, 정부기준 빈곤선에 의해 측정된 말레이시아의 빈곤이 1970년 이래 현저히 감소되어 왔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는 막대한 경제 성장과 신경제정책 하에서의 공공부문 지출의 성장여력이 저소득층에 내려오는 엄청난 적하효과에 기인한 것이다. 민족간의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농업부문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들 수 있다. 농업부문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말레이인의 소득을 증가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함과 동시에 국가적 빈곤의 감소라는 측면에서 효과가 있는 정책이었다. 비록 빈곤의 문제가 농촌에서 그리고 부미푸트라 집단에서 완전히 일소된 상황은 아니지만 20년 전과 비교할 때 괄목할 만한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표3 지역별 빈곤율의 변화(단위: %) 출처: Samsudin Hitam, Development Planning in Malaysia Labour Marketstand Human Resource Planning in Asia: Perspective and Evidence, Geneva: ILO, 1993, p.185 정치적으로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의 권위주의 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의 발전은 서구와는 다른 가치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발전의 경로도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서구 민주주의자들의 말레이시아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여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체제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마하티르는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론에 대해 특수성이 아닌 아시아적 보편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정권연장을 위해 필요한 이슬람과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한 경제적 합리성의 결합이 아시아적 가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상반된 가치들의 결합인 아시아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아시아적 가치론의 보편성을 주장하면서 마하티르는 서방의 언론에 끊임없이 도전을 하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론의 보편성 추구는 대외적인 성격보다는 대내적인 성격이 더 강한 것 같다. 보편성이라는 말은 다민족사회의 복잡성에 대한 일종의 불가피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한데, 말레이시아 국내의 동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아시아적 가치론의 아시아적 보편성은 매우 크게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산업화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의 서구화와 배금주의의 확산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이데올로기적 대응의 성격도 가진다. ②이슬람과 말레이시아 5.13사태 이후 거세진 이슬람의 도전에 직면한 말레이시아 정부의 대응전략은 ①정부 스스로가 이슬람원칙의 적용을 강화하고 이슬람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이슬람학을 대학입시의 주요 과목으로 지정하는 등의 이슬람화 정책과 ②여러 전략적, 법률적 조치들을 통해 종교운동단체인 닥와집단의 활동을 약화시키는 억압정책으로 나타났다. 이중 특기할 만한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마하티르가 경제적 발전이 정신적인 발전을 저해해서는 안되며 따라서 이슬람적 가치의 희생없이 규율적이며 도덕적으로 건전한 현대화된 사회의 건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에게 비교적 거부감이 덜한 동양의 선진국인 일본 및 한국으로부터 경제발전모델을 도입한다는 취지에서 동방정책을 채택했다. 또한 경제발전을 위한 정부의 이슬람적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해 엄격한 이슬람원칙하에서 운영되는 이슬람은행, 말레이시아사 이슬람발전재단, 이슬람 보험회사 및 이슬람 전당포를 설립했다. 1982년 출범한 마하티르 정부는 제반 이슬람 행사에 대한 연방정부의 감독권을 강화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슬람 종교학교를 증설하는 대신에 전통적인 종교교사인 뽄독에 대한 통제는 강화시켰다. 이같은 공공정책의 이슬람화 추진은 이슬람 종교업무권한을 둘러싼 마하티르 수상과 무슬림 수장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술탄들 간의 갈등을 촉발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으로 주 술탄의 영역으로 인정되고 있던 이슬람 관련 현안들을 연방정부로 통합시킴으로써 마하티르 수상의 정치적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별히 뽄독에 대한 통제는 말레이계 무슬림을 기반으로 하는 야당인 말레이시아이슬람당 PAS(Parti Islam Se-Malaysia)의 전통적인 정치적, 종교적 기반을 위협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슬람 단체들인 닥와(dakwah)집단을 약화시키기 위해 영향력이 강한 정적을 정부여당으로 영입하는 전략을 구사하여 1982년 ABIM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안와르 이브라힘을 UMNO에 영입하여 그의 정치적 지위를 강화하여 젊은 말레이인들의 지지를 유지하려 하였다. 이슬람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마하티르 수상의 또다른 대응전략은 새로운 말레이인의 민족정체성 창조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신경제정책은 목표설정대로 말레이계 중산층 및 부르주아 계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풍요로운 경제여건 속에서 영어를 구사하면서 말레이어, 말레이문화 및 말레이 술탄을 상징으로 하는 말레이민족주의에 그다지 집착을 보이지 않는 말레이사회의 이 새로운 사회계층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최대 수혜집단으로서 이슬람과 현대화의 접목을 시도하는 마하티르 정부의 이슬람관을 지지하는 세력이다. 이러한 사회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마하티르 수상과 UMNO의 부르주아 지도자들은 이슬람국가 설립을 비젼으로 제시하고 있는 PAS와 닥와집단의 이슬람관과 상충되는 신말레이인의 비젼을 창조하면서 이슬람의 도전을 무력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말레이시아의 이슬람부흥운동은 침체의 기미가 역력하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볼 때 비록, 이슬람부흥운동은 이슬람국가 건설이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데는 실패했지만, 사회전반에 이슬람적 기풍을 강화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1970년대 이전과 비교하여 이슬람적 기풍과 가치가 널리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슬람적 기풍의 강화는 이슬람세력의 자체적인 노력은 물론 이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전개된 마하티르의 이슬람화 정책의 결과이다. 오늘날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과 말레이 민족정체성과는 여전히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말레이계와 비말레이계를 구분하는 기준임과 동시에 말레이계 단합의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 이슬람계와 이단시된 이슬람계로 구분되어 분열의 요소이기도 하다.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슬람화 정책과 억압정책을 통해 이슬람세력을 통제하는데 성공했고, 이슬람세력들은 정부에 수세적인 입장이다. 한편, 마하티르와 말레이계 각료들은 비무슬림 사회가 정부로부터 공정한 게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여 왔다. 말레이계에서도 이슬람화 과정은 반드시 다민족으로 구성된 말레이시아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비무슬림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도 이슬람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말레이인들도 많다. 그러나, 중국계들은 이슬람부흥운동과 이슬람 정책 등 이슬람화 과정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한 태도를 취해 왔다. 중국계를 비롯한 비무슬림 사회는 대체로 이슬람 관련사항은 말레이인들의 일로 치부해 왔다. 그러나, 이슬람화 조치가 비무슬림들에게 영향을 끼칠수록 민족간의 갈등과 긴장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편, 마하티르는 말레이인들이 말레이인다움(Malaymess)을 유지하는 것을 강조해 왔다. 즉, 말레이인의 생존은 정치적 헤게모니와 경제적 우월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해온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하티르의 이슬람 정책은 두 가지 관점에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이슬람을 통해서 말레이 민족의 정체성을 개발하여 말레이인들을 단결시키기 위한 것이며, 둘째, 비무슬림계 국민들의 반발을 고려하여 경제성장과 다민족사회의 안정을 지속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마하티르의 이슬람은 실용적이며 세속적인 이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이슬람화 정책을 통해서 말레이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고 말레이 민족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으며,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을 위해서 다민족 사회인 말레이시아에 자신의 이슬람정책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이슬람 정책의 변화양상은 다음과 같다. 1970년대 이전에는 이슬람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대해 방임하고 있었다. 5.13사태를 전후하여 일어나기 시작한 이슬람부흥운동과 이를 주도하는 닥와집단과 이슬람정당으로 UMNO와 지지경쟁을 벌이는 PAS를 견제하는 목적과 함께 말레이계의 민족성을 고취하기 위해 이슬람부흥운동에 참여와 통제를 시작한다. 1980년대에 들어 마하티르가 집권하면서부터 이슬람부흥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로써 정부가 강력한 이슬람화 정책을 시작한다. 이는 경쟁정당인 PAS나 닥와들을 견제하면서 정부가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외국인 직접투자에 의한 산업화로 인한 경제성장으로 이슬람화 정책은 그 정도를 낮추게 된다. 대신에 이슬람과 자본주의가 대립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아시아적 가치론을 들고 나오게 된다. 이러한 이슬람 정책이 불가피한 것은 이슬람교가 말레이 민족성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현재 말레이인을 구분하는 가장 1차적인 요소는 이슬람교이다. 말레이계라고 해도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다면 말레이인으로서의 특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은 집단정당인 UMNO의 주요지지세력이 농촌 무슬림이었고, 현재는 이들과 더불어 도시에 새롭게 형성된 말레이 중산층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지지세력으로 유지시켜야 UMNO가 지배정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어서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이룩해야 하는데 자본주의적 가치를 배제하는 전통적인 이슬람교리로 인해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발전은 논리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도전받을 여지가 많다. 이 때문에 양자를 융합하고 UMNO의 권위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여 기존의 경제성장전략을 유지하고 사회안정을 이루려는 목적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주장되어지게 된다. 4. 결론 말레이시아는 경제적인 성과를 올려야 민족간 안정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경로를 탐색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본격적인 산업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1970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말레이계를 우대한 산업화 정책은 기형적인 경제 행태를 양산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비효율적임이 드러났다. 싱가포르가 일찍부터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여 다국적 기업에 의한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를 시작했던 것에 비해 말레이시아는 국가적인 생존조건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내국인 중심의 산업화를 시작하였지만, 다민족 국가의 특성상 특정 민족에게 경제력이 집중되었고, 이는 심각한 내적 불안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불안은 급기야 1969년의 5.13사태로 비화되어 말레이시아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민족간 불만의 위험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는 빈곤퇴치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내건 신경제정책이 나오게 만들었다. 신경제정책은 민족간 안정을 위해 경제적으로 열세인 말레이계의 경제력 상승을 위해 말레이계에 대한 교육, 공직, 사업 등에 있어서의 우대를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신경제정책은 20년 내에 국가 전체 자산의 3%도 소유하지 못한 말레이계가 자산의 30%를 소유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말레이계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확대해주고 공직진출과 사업활동에 특혜를 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인구의 35%를 넘기는 중국계와 인도계에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5.13 사태의 악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말레이계를 근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의 민족성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말레이 민족정체성의 핵심인 이슬람교가 강화되었다. 또한, UMNO의 지지기반인 말레이계 무슬림, 특히 농촌 말레이계를 놓고 지지경쟁을 벌이는 야당인 PAS나 이슬람운동단체들인 닥와집단들의 공세에 대해 정부 스스로가 이슬람화 정책을 추진하여 정권의 기반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추진된 신경제정책은 다른 민족들의 인내로 인해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과도한 말레이계 우대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엄청난 재정투여로 능력이 결여된 말레이계에게 이권만 주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업이 잘 된다해도 생산성은 형편없었고, 특혜만을 가지고 장사하는 알리바바 경영이 성행했다. 중국계도 신경제정책을 피하기 위해 생산적인 방식으로 대처한 것이 아니라 투기나 청탁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결국, 말레이시아 경제의 생산성은 비효율적이 되었고, 경제적 합리성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는 대내외적인 경제적 악재에 대해 말레이시아의 면역력을 낮춘 것이었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의 세계적인 경제불황은 1982년에 집권하여 말레이계 우대정책을 수행중이던 마하티르로 하여금 이를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고,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여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를 착수하게 만들었다. 새롭게 시작된 외국인 투자에 의한 산업화는 싱가포르와 같은 경제의 삼각축을 이룰 수 있게 하여 경제적 합리성을 증진시켜 고도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가치를 배척하는 이슬람 교리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야 했고, 이에 따라 아시아적 가치가 주장되었다. 아시아적 가치는 상당히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우선 이슬람적 가치를 중화시키는 것이고,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국내안정을 이루려는 것으로 대내외적으로 말레이시아 정치체제의 독특성과 건재함을 보이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서구 언론의 전망보다는 좋은 것이어서 1997년 닥친 아시아 경제위기를 나름대로 잘 넘길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였다. 현재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나타난 안와르 이브라힘 전부수상 문제는 포스트 마하티르 시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리 큰 영향을 미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돌발적인 상황의 변화가 없는 한 민족간 불안하나마 균형이 유지되겠지만, UMNO를 중심으로 한 집권엘리트들이 패권을 유지해가면서 모든 민족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상당한 딜레마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말레이시아는 통합이 아닌 類似的 통합상태만을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말레이시아가 말레이계를 중심으로 국가를 재편하였지만, 중국계와 인도계를 비롯한 여타 민족들은 아직도 말레이시아 정부의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정치·경제적 영향력도 아직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강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국문단행본 Mary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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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연구> 제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