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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을 수놓은 아오이 마쓰리(葵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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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작성일 09-05-18 수정일수정일 70-01-01 조회8,1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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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토통신>-10

5월을 수놓은 아오이 마쓰리(葵祭)

 

                                                          최  영  호

                                                                      (한국민족연구원 연구위원)

쿄토는 어느새 모심기가  한창이다. 시내에서 10분내지 20분 정도만 차를 타고 나가면 밭과 논이 펼쳐진다. 이곳의 5월은 모가 심어진 논까지도 하나의 꽃이 되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  오늘은 온갖 꽃들과 신록의 향으로 가득한 쿄토에서 행해지는 아오이 마쓰리(葵祭)에 관한 얘기이다. 

6세기부터 시작된 긴 역사를 가진 이 아오이 마쓰리를 보면서 모가 심어진 논을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 그 유래가 농사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만나는 기우제였으리라.  그 유래를 소개한다.

그 옛날 어느 해, 흉년이 계속되자 조정에서 점을 쳤더니 카모(賀茂)신의 저주라는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젊은이에게 멧돼지 가면을 씌워 방울을 단 말을 타고 달리게 했더니 오곡이 풍성 해 졌다는 게 그 시작이고, 그 이후 헤이안 시대 초기(810년)에 왕위 다툼에서 이긴 국왕(嵯峨天皇)이( 아래의 두 신사에 빌었더니 이겼다고 함) 그 고마움으로 자신의 딸을 카미카모(上賀茂) 신사와 시모카모(下賀茂)신사에 봉사하도록 한 것이 더 해져서 사이오(齋王)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1km에 달하는  국가적 행사의 행렬이 생겼다고 한다. 400년간 계속되었다는 이 행렬은 옛날 국왕이 살았던 고쇼(御所)를 출발하여 시모카모 신사를 경유, 카미카모 신사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하루 종일 걸린다. 색색의 의상을 입은 남녀가 말을 타고 혹은 소등 여러 장치를 앞세우고  가마 속에 앉은 사이오를 앞 뒤로 호위하며 쿄토의 중심거리를 누비는 이 행렬을 보기 위해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단체 관람객, 외국인, 또는 남녀노소도 하나의 구경꺼리가 된다. 교통도 마비되고 참가하는 사람들은 직장도 쉬어야 하는데도 모두 참으며 몇 개월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 행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1956년 부활한 이래  쿄토를 대표하는 3대 축제의 하나가 된 이 마쓰리를 보기 위해 5월 15일을 기다린 이유는 다른데 있다. 일본에 건너 온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를 이곳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헤이안 시대에 왕위쟁탈전에 이기기 위해 왕이 간절히 빌었던 신이 카모 신사에 모셔 진 신이었다면 그 신의 위력이 그 당시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은 하타씨가 세운 마쓰오 신사에서 모시는 신인 오오야마구이노카미(大山咋神) 아들신이다. 기록에 의하면 카모씨와 하타씨는 결혼으로 맺어진 인척관계였다. 요새말로 정략결혼을 통해 카모씨는 선진문화와 경제력을 얻고 하타씨는 그 성(姓)을 사용함으로서 도래인으로서의 부족함을 채워 서로 이익을 나누어 가졌다는 기록이 후시미이나리 대사(伏見稻荷大社) 역사에 나와 있다.  또 하타씨 집안의 사위가 카모씨 였다는 기록이 <하타씨 혼케이쵸>(秦氏本系帳)에도 있다고 한다. 

쿄토에서 가장 오래 된 절이며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으로 유명한 코류지, 이절을 세운 하타노카와카쓰(진하승)의 저택이었던 곳이  헤이안으로 수도를 옮길때 국왕의 거주지(大内里)가 되었다는 기록이 촌상천황기(村上天皇記)에 나와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그들,  술의 신을 모신 곳으로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 마쓰오 신사,  사업 번창을 비는 곳으로 하쓰모우데(初詣)라는, 신사를 찾아 가 일 년 신수를 비는 새해의 행사 인구가 정월 초 하루 부터 3일간 무려 250만이 넘는 다는 후시미이나리신사 등을 통해 하타씨라는 걸출한 도래인 호족을 만난 나는 아오이 마쓰리(葵祭)의 화려한 행렬 앞에서 쿄토의 개척자 하타 씨족을 다시한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왕실이 미혼의 공주를 보내 그 고마움을 표시하고 또한 왕실과 조정의 권위를 나타내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던  이 행사의 목적지가 어디인가?
왕이 거주할 곳을 제공할 정도의 힘을 가졌던 하타씨들과 관계 깊은 이곳에 왕실이 400년간 정성을 다해 신사에 보낸 공주는 35명 , 그 후 무사들이 정권을 잡은 바쿠후(幕府)시대 이후에 왕실의 권위를 없애기 위해 사이오우(齋王)행렬을 폐지하기도 했다니 가히 그 위력을 알만하지 않은가?

하타씨의 씨신을 모신 신사에 바쳐지는 행렬이 수백 년을 이어 와 일본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고 지금도 살아서 일본인 뿐 아니라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현장에서 나는 인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능력이 있는 인간들은 이렇게 살아남는구나......
일본인에게 첨단 문화를 가르쳐 준 그들 ,하타씨 족은 비록 태어 난 땅은 아니었으나 그들을 알아주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지금도 살아 계셨다. 저 멀리 행렬이 나타난다. 말들이 놀랠 수 있으니 카메라 후렛쉬를 터트리지 말라는 소리도 들리고 환성을 지르지 말라는 주의도 들린다.

드디어 머리와 가슴 또는 어깨에 아오이로 장식한 남녀 노소 행렬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아오이는 우리나라 말로는 ‘당아욱’이라 한다。 접시꽃 잎과 같이 생긴 이 풀잎은  최근에 무슨 이유인지 점점 없어져서 일본에서는 ‘아오이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키워 신사에 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도 같이 참여 하여 전통을 지키는 일을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히고 있었다.  아오이라는 이름이 신과 만나는 날(아우히)의 발음과 같은 데서 이 조그만 잎이 아오이마쓰리의 심볼이 되었다고 하니 재미있다. 마쓰리는 신의 강림을 기다리는 의미였다니 그럴 만도 하다 .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에도시대의 장군, 토쿠가와 집안의 문장이 바로 이 아오이잎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신과 만난다는 의미를 살려 쿄토에 있는 왕실의 권위를  죽이려고 한 그들의 마음이 삼엽규(三葉葵, 미쓰바아오이)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니 무서울 것이 없었던 그들도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약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올해의 사이오(齋王)는 대학 4학년 생으로 대대로 이어 오는 茶道 집안의 장녀였다. 센노리큐(千利休)이후 차도의 유파가 본가인 오모테센케(表千家)와 분가인 우라센케(裏千家)로 나누어졌다는데  이번에 뽑힌 사이오는 우라센케에서 나왔다. 아오이 마쓰리의 하이라이트를 뽑는 것도 단순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주로 차도 집안에서 키워 진 딸들이 주인공이 된다니 일본 전통을 지켜 가고 싶은 일본인들로서는 그 옛날의 공주에 가장 근접한 일본적인 여성을 차도 집안에서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고 했다.

 5월 15일은 아침부터 쾌청한 날씨로 시작되더니 변덕스러운 쿄토 날씨도 하루 종일 잘 견뎌 주었다.  조상들은 모처럼 기회를 얻은 우리의 마음도 들어 주신 것이 아닌지....

4시 30분,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행렬이 다 지나갔다.  행사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까봐 조심하는 군중들 속에서 나는 참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매년 변함없이 반복되는 이 축제를 위해 자신의 일을 뒷전으로 미룬 사람들의 그 엄청난 노고, 하루 종일 걸리는 이 행렬 때문에 불편한 교통을 참아 주는 사람들, 기모노를 입고 성장하고 나와 구경하는 사람들. 현장의 질서에  협력 하는 사람들,  관광버스로 찾아 온 다른 지역 사람들. 외국인들. 바로 이들이 하타씨를 현대에 살게 한 주인공... 이것이 바로 일본의 힘이구나.    200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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